아이가 “요새 수학이 어려워요” 하면 대치동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학원을 옮기자. 그럴까봐 다 알아봐 뒀어.”
압구정동 엄마는 “그래서 진작 떠나라고 하지 않든” 가볍게 나무라며 유학 수속을 서둔다.
동부이촌동 엄마는 차원이 다르다. 베란다 커튼을 활짝 열고 한강 너머를 가리킨다. “걱정 마라. 요것도 우리 빌딩, 조것도 우리 빌딩이니까.”
웃자고 만든 얘기인 건 분명하다. 그래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보통 엄마는 불안하다. 저 엄마들이 미쳤나, 그 동네에 못 사는 우리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싶어지면서, 엄마들을 널뛰게 만드는 공교육 현실과 나라꼴은 물론이고 곰 같은 남편에게도 분노가 치민다.
▼자녀 성적=母性 경쟁력▼
이 대목에서 ‘미친 엄마’들을 비난하기는 쉽다. 자기 욕심 때문에 자녀를 들볶고 이웃과 사회까지 괴롭히는 극성 교육열을 개탄한 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끔 공교육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모범답안에 속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사회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회적 역할모델이 돼 버린 중상층 엄마들 상당수는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386세대다.
대학에선 여성도 능력만 있으면 사회에 나가 성공할 수 있다고 배운 그들이었다. 하지만 입사지원서마다 군필남(軍畢男)을 요구했고 간신히 취업했더라도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동동거리다 결국 일을 포기해야 했다. 정말 살림을 좋아해서 가정을 택하지 않은 이상,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은 맹장처럼 매달려 있다.
자녀는 그들에게 꿈의 프로젝트다. 엄마의 아쉬움을 보상해 줄 뿐 아니라 대리 자아실현도 가능하다. 잘나가는 취업 주부에 비해 전업 주부의 경쟁력이 단연 앞서는 쪽도 이 방면이다. 더구나 지금은 엘리트 교육이 평생 수입을 결정하는 승자독식(勝者獨食) 글로벌 시장경제 아닌가. 이제 와서 취직할 수도 없는데 암만 해 봐도 헛헛한 취미활동이나 불확실한 재테크에 빠지는 것보단 ‘자(子)테크’가 현명하다는 거다. 이들 덕에 평준화 학교의 성적이 오르는 점도 부인 못한다.
386 엄마들은 이제 학교엔 관심도 없다. 이들이 선호하는 교사는 ‘귀찮게 하지 않는 교사’다. 학원 보내기도 바빠서다. 교육은 경주(競走)가 됐다. 다들 잘 달려도 남들보다 좀 더 높은 점수 받고 좀 더 좋은 대학 나와야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공교육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사교육시장이 없어지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처럼은 안 살겠다고 외치던 386이 위세대 뺨치는 테크노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 거부 사태 볼 텐가▼
그렇다고 해서 교과학습도 학원에 내준 채 ‘폭력의 전초기지’가 된 학교를 이대로 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성난 보통 엄마들이 학교 거부 사태를 일으키기 전에 학교는 학생마다 제대로, 즐겁게 달릴 수 있도록 최대한 잠재력을 키워 주는 곳으로 개혁돼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참여의 꿈을 지닌 엄마들을 돕는 제도가 확실히 마련돼야 노동력 부족과 인구문제, 여성문제도 풀 수 있다.
단 엄마들도 ‘자식 비즈니스’ 역시 신경제 못지않게 냉정해졌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부부생활까지 포기하며 뒷바라지해 봤자 잘난 아이들은 저 혼자 큰 줄 안다. 자녀 성장에서 성취감을 찾되, 그들로부터 조기퇴직 불명예퇴직 당하곤 우울증 걸리지 않으려면 언제라도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삶의 균형을 확보해 두는 게 좋다. 특히 노후자금만은 절대 털리지 말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