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의 푸치니 ‘보엠’. 파리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이브를 축하하는 2막의 한 장면이다. 선진 연출기법을 선보이는 외국 프로덕션의 직수입 무대도 오페라팬들의 ‘눈높이’를 높여주는 요인이다. 사진 제공 서울 예술의 전당
한국 오페라가 꽃 피는 봄을 맞는가.
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이 무대에 올린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본 관객들은 “이 정도면 유럽 무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 아닌가”라며 찬탄했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이 주최한 ‘아이다’ 공연에 대한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출연자들의 가창력, 완성도 높은 합창과 관현악, 자연스러운 무대와 연출 등 예전에 비해 확연히 오페라 공연 수준이 높아진 것. 공연 전문가들은 ‘한국 오페라 공연의 완성도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평가한다. 어떤 요인이 작용한 것일까.
○1급의 맨파워
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이 공연한 ‘보엠(라보엠)’에는 주인공 커플의 친구인 네 명의 조역이 등장한다. ‘더블 캐스팅’임을 감안하면 필요한 성악가는 여덟 명. 이번 공연에서는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 주역가수인 베이스 사무엘 윤, 영국 카디프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바리톤 노대산 씨 등 유럽과 미국의 오페라극장에서 주역 급으로 활동 중인 한국인 성악가들만으로도 배역을 모두 채울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로마에만 각 5000명 넘게 수업 중인 한국인 성악 유학생들이 토대를 이룬 ‘맨파워’다.
조역 급의 수준을 이 정도로 갖추다 보니, 음반이나 해외 공연계 뉴스 등을 통해 낯익은 ‘스타’들을 모셔오는 일도 놀랍지 않게 됐다. ‘보엠’에서 로돌포 역을 맡은 테너 리처드 리치,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리골레토’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바리톤 레오 누치, 한국오페라단 ‘루치아’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루치아 알리베르티 등은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오페라에 ‘모셔 올’ 엄두조차 못 냈던 A급 성악가들.
합창단의 질도 국내 오페라의 ‘기초체력’ 향상에 공헌하는 중요 요소다. 최근 국립오페라단 ‘마탄의 사수’ 연출을 위해 내한한 독일의 원로 오페라연출가 볼프람 메링 씨는 “유럽 합창단은 장년층이 주축이 되기 때문에, 청년층 위주의 한국 합창단이 내는 윤기 있는 소리를 따르지 못한다”고 탄복했다.
○“관객이 무서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오페라 관객은 5년 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음악, 무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게 됐어요.”
정은숙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의 말이다. 오페라를 감상하고 분석 토론하는 동호인 모임들이 오페라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음악감상실 ‘무지크바움(www.musikbaum.com)’에서만 3개 반 120명으로 이루어진 ‘마리아 칼라스 소사이어티’를 비롯해 ‘라 돌체 비타’, ‘클럽 카루소’ 등 오페라 애호가 모임들이 활동 중이다. 준전문가급 애호가 모임인 ‘광장클럽’의 게시판에는 오페라 공연 때마다 세밀하고 따가운 감상 평들이 쏟아진다.
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 예술아카데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오페라 강좌 인원을 40명에서 100명으로 늘렸다. 주부 회원들의 수강 신청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이 늘어난다는데…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은 한강 중지도에 2007년까지 오페라하우스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경기 고양시의 고양문화재단도 일산신도시 중심부에 2006년 2000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2년 뒤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포함해 수도권에만 3개의 대형 오페라 전문 공연장이 생기는 셈. “소프트웨어나 관객 규모에 대한 고려 없이 중복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난도 있지만, “인구 2000만 명 규모의 수도권에 적당한 규모”라는 찬성론도 만만치 않다.
오페라 칼럼니스트 유형종 씨는 “최근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 음악극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관객 일부는 오페라 관람으로 이동할 전망”이라며 “이미 수요가 창출된 상황에서 개성 있는 극장들까지 문을 연다면 오페라 붐이 더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