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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3-14 19:17:00

그림 박순철


“하열(何說)이란 위인은 제 주인의 심부름을 가서 몰래 남의 발밑을 팔 말주변은 있어도, 그 장재(將材)는 보잘 것 없습니다. 제게 군사 1만만 주시면 한 싸움으로 그 목을 안장에 달고 돌아오겠습니다.”

주인의 심부름을 가 몰래 남의 발밑을 팠다는 것은 전해 7월 하열이 장동(張同)과 함께 진여의 사자가 되어 제나라 왕 전영(田榮)을 찾아갔던 일을 가리킨다. 그때 하열은 제왕 전영을 부추겨 진여와 함께 상산(常山)을 치게 함으로써, 장이는 나라 없는 왕이 되어 한왕에게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상국이오.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진다(輕敵必敗) 했으니 상산왕께서는 너무 서둘지 마시오.”

한신이 희미한 웃음으로 장이를 달래고 이어서 말했다.

“장재가 보잘 것 없다면 스스로 싸움터를 고를 수가 없어, 기다리고 지키는 것을 위주로 할 것이오. 내가 보기에 하열은 아마도 대 나라의 도읍이 되는 평성(平城)에 머물러 지킬 듯싶소. 그런데 여기서 평성까지는 천리 길이 훨씬 넘고 또 상산 땅을 돌아서 가야 하오. 따라서 열에 아홉 하열은 마음을 놓고 있을 것이니, 우리는 그 틈을 타는 것이 좋겠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닫기를 곱절로 해 평성을 들이치도록 합시다.”

그 말을 듣자 장이도 더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다. 이끌고 온 장졸들을 한신에게 바치고 스스로 그 막하에 들어가 군명(軍命)을 받들었다.

한신과 장이가 이끄는 5만 대군이 대(代)의 도읍인 평성에 이른 것은 한(漢) 2년도 다해가는 9월 하순이었다(周曆으로는 10월이 정월이 된다).

그때 대나라를 다스리던 상국(相國) 하열도 서위(西魏)가 망하고 그 왕 위표가 사로잡혀갔다는 풍문은 듣고 있었다. 하지만 한왕이 팽성에서 크게 낭패를 보았다는 소문도 들은 터라 설마 여기까지야, 하며 마음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읍(馬邑)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한나라 대군이 몰려와 성을 에워쌌습니다. 급히 원병을 보내 주십시오.”

빠른 말로 달려온 군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알리자 하열은 어리둥절했다.

“한나라 대군이라니? 어서 돌아가 형양을 지키기에도 바쁜 한군이 언제 그렇게 멀리 북상(北上)하였다더냐?”

“대장군 한신과 전 상산왕 장이가 이끄는 군사들인데 평양에서 바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10만이라고 일컫는데 그 기세가 여간 사납지 않습니다. 상국께서 급히 구원을 보내지 않으시면 마읍은 며칠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상산왕 장이의 이름을 듣자 하열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 진여의 명을 받고 제왕(齊王)을 부추겨 몰래 장이를 해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진다면 살아날 길이 없다 싶었다. 급히 진여에게 사자를 보내 구해주기를 요청하는 한편, 원병이 이를 때까지는 있는 힘을 다해 버텨보기로 했다.

하열은 먼저 군사 1만을 갈라 마읍으로 보내고, 다시 평성 성안 군민을 모두 성벽위로 끌어내 만일에 대비하게 했다. 그런데 하루도 안돼 마읍을 구원하러 간 장졸들 가운데 몇 명이 피투성이로 쫓겨 와 알렸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