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 위원장이 10일 한국에 대해 “적을 밝히라”고 발언한 데 대해 정부와 여당이 14일 일제히 반박하고 나선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여권으로선 그래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일각에선 이 같은 대응이 한미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적절한 대응인가?=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직접 하이드 위원장의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선 것은 내용면에선 문제가 없으나 방법에선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고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요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 같은 대응은 아무래도 신중하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북한과 미국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식의 발언을 한 하이드 위원장의 발언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미국 정치인이 의회에서 한 이야기에 대해 한국의 외교안보팀장이 직접 대응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19, 20일로 예정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여권이 하이드 위원장의 발언을 정색을 하고 따진 것은 시기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대신 국회가 나서거나 외교채널을 통해 하이드 위원장에게 한국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
▽북한 문제를 보는 한미의 시각차=‘한국의 태도가 혼란스럽다’는 하이드 위원장의 메시지는 미국 보수층의 대한(對韓)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미국은 동맹, 북한은 동포’라는 논리로 대미, 대북 관계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6·25전쟁에서 같이 피를 흘리고 싸운 혈맹(血盟)인 미국과, 그 반대편에서 침략전쟁을 감행한 북한이 어떻게 동등하냐는 게 미국 측의 시각이다.
이 같은 시각차는 한미가 공동보조를 취해 북핵 문제 등을 풀어가는 데 제약이 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일부 미국 정치인의 이해 부족을 바로잡으려 시도했던 것 같다.
정부의 한 핵심당국자는 “하이드 위원장이 편견을 가지고 발언한 내용이 언론에 대서특필돼 정부로서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일종의 주권침해적인 발언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면 된다”고 밝혔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