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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서현]세종로를 시민공간으로 만들자

입력 | 2005-03-15 18:20:00


문은 문이로되 문이 아니로다. 이 이상한 문이 광화문이다. 지금 광화문이 임진왜란 때 불탄 광화문은 물론 아니다. 고종 연간에 새로 짓고 일제강점기에 옮겨가고 6·25전쟁 때 불탄 그 기구한 광화문도 아니다. 옛날 광화문과 비슷한 자리에 있기는 하나 딱 그 위치도 아니다. 옛날 광화문과 비슷한 모양이기는 하나 그 부재들로 만든 것도 아니다. 광화문은 광화문이로되 광화문이 아닌 것이다.

이런 이상한 광화문에 현판 문제로 탈이 붙었다. 새로운 현판을 걸되 임금님의 글씨를 집자하느냐, 디지털로 복원하느냐로 시끄럽다. 한글, 한자 논쟁까지 끼어들었다. 그냥 놔 두자고도 한다.

이 논쟁이 주목을 받는 것은 우리가 지닌 역사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격렬해지는 것은 근대사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그처럼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건축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건축이 역사관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분명 군주국 조선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조선시대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조선 백성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독도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도가 우리 할아버지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이 예와 도와 법이었던 조선의 문화적 전통이 지금 현판 논란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바뀐 것은 우리의 주인이 임금에서 우리 자신, 시민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제자리 못 찾은 광화문 복원▼

투표로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사회의 모습은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충청도의 유권자 수가 중요하니 행정수도와 행정도시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옮기겠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국토와 도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치인들은 인용하고 싶은 이야기만 들었을 것이다. 판단은 표 계산으로 했을 것이다. 재선 여부가 존재의 의미인 정치인들이 특별법을 통과시켰으니 스스로 일을 거슬러 수습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는 옮겨갈 행정부처가 있던 경기 과천시에 결사반대, 절대불가의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했다. 과천 시민, 서울 시민을 무마한다고 이런저런 대안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옮겨 가야 한다면 가야 할 것은 과천청사의 행정부가 아니다. 세종로에 버티고 선 정부중앙청사의 행정부처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비게 될 과천청사로 가든, 직접 충청도로 가든 옮겨야 할 대상이다.

세종로는 권력의 도시공간이었다. 관료와 자동차의 공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들을 들어내고 문화와 사람을 채워 넣어야 할 일이다. 정부중앙청사가 사라진다면 광화문을 제자리에 제대로 복원할 수 있다. 그 앞의 월대까지 복원할 수 있다. 보행자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광화문이라는 건축구조물의 복원이 아니다. 이 복원을 통해 우리 사회, 도시의 가치가 권력다툼이 아닌 문화적 성취에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이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 말 텅 빈 국고와 이어지는 탄핵상소 속에서도 경복궁을 재건한 것은 이것이 국가 가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건축적 가치를 옹호하는 반대론 속에서도 조선총독부 청사를 헌 것은 그 건물이 식민지 통치자가 세운 구조물이었기 때문이다.

▼바뀌어야 할 권력의 공간▼

지금 광화문 복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선 말 경복궁 중건에 파묻힌 민초들의 고통을 능욕하자는 게 아니다. 군주의 시대, 제왕적 통치자를 그리워함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백성들은 권력과 바퀴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 조선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잇고 있으되 백성이 주인이 된 사회, 대한민국을 이제 도시에서, 세종로에서 공간으로 구현하자는 것이다. 청계산 우면산 골짜기에 문화시설을 만들면서 권력의 과시적 시혜 수단으로 문화와 건축을 사용하던 시대가 지났음을 증명하자는 것이다.

도시의 주인은 계수기로 합산되는 투표용지도 아니고 네 바퀴 달린 기계도 아니다. 문화적 활동의 주체로서 사람이 도시의 주인이다. 도시는 사회의 야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제 광화문은 바뀌어야 한다. 세종로가 바뀌어야 한다. 현판은 그 다음에 나올 문제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