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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임채청 칼럼]한나라당의 宿患

입력 | 2005-03-15 18:20:00


야당(野黨)의 ‘야’는 광야의 ‘야’고 야생의 ‘야’다. 외롭고 힘들어도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는 ‘야’인 것이다. 의정풍토가 척박한 한국에서는 특히 야성(野性)이 야당의 생명력을 좌우해 왔다. 그러나 요즘 그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며칠 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한 의원이 행정도시법을 통과시켜 준 당 지도부를 비난하면서 ‘야합’이니 ‘사쿠라’니 하는 말을 입에 올렸다. 민주화 이후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한 말이었다. 그의 과도한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까지 지나칠 수는 없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중도는 있어도 여당과 야당 사이에 중간은 없다. 여당은 여당이고 야당은 야당일 뿐이다. 남녀가 유별(有別)하듯이 여야도 유별한 것이다. 주요 정당이 모두 보수를 표방하던 권위주의 시절에도 여와 야의 경계는 비교적 분명했다.

정당의 이념 분화가 뚜렷해진 지금 오히려 그 경계가 흐트러지고 있다. 야당 같은 여당의원과 여당 같은 야당의원이 많아져서다. 그중 한 부류는 여당 옷이 몸에 안 맞는 여당의원과 야당 옷이 마음에 안 드는 야당의원인데 이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곧 적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부류는 이념적 정체성이 모호해 바람 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다. 열린우리당보다는 한나라당에서 그런 사람들을 훨씬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재적 3분의 1이 넘는 의석을 가지고도 시종 싱겁게 열린우리당에 끌려 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무기력은 16대 국회까지는 볼 수 없었던 17대 국회의 새로운 현상이다. 이제 한나라당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이 없다. 현재와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된 병력(病歷)은 꽤 길다. 다만 오랜 잠복기를 거쳐 뒤늦게 그 증상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만 떠올려 보자. 7년여 전 한나라당으로 개명(改名)한 이후 지금까지 주요 경선에서 2차 투표까지 간 경우가 있는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진통 속에 치러진 지난주 원내대표 선거도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 섞인 전망과 달리 1차 투표에서 바로 판가름이 났다.

도전과 변화를 겁내고 대세에 순응하는 한나라당의 체질은 고질적이다. 그런 한나라당의 야성을 근근이 유지시켜 준 것은 외적 충격이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당혹과 분노가, 2000년 총선 승리 이후엔 여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지탱해 주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자기혁신에 게을렀고, 그 참담한 결과가 2002년 대선 패배였다. 이후 한나라당이 보여준 야성은 정권을 또 빼앗긴 데 따른 불안과 공포의 표출이었고, 그 파국적 결말이 대통령 탄핵소추였다. 탄핵 역풍으로 인한 2004년 총선 패배가 결국 한나라당을 기진케 했다.

그로부터 1년도 안돼 한나라당은 여권의 논리에 하나둘 순치(馴致)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판을 ‘여 대 야’가 아니라 ‘개혁 대 수구’의 구도로 몰아간 여권의 전략이 주효했다. 여 대 야의 구도에선 여가 수세적일 수밖에 없지만, 개혁 대 수구의 구도에선 수구가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다.

야성을 되찾는 것이 한나라당이 회생할 수 있는 외길이다. 즉, 유권자가 부여해 준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에 충실할 때만 한나라당이 당당해질 수 있다. 계기야 어떻든 박세일 씨가 당 정책위의장직에 이어 의원직마저 내던진 것 또한 야성 회복을 촉구하는 경종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외치고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