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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무덤에서 걸어나온 ‘말러10번’

입력 | 2005-03-15 18:36:00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고 시인 기형도는 썼다. 주중에는 생활인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주말에는 고전을 읽었던 모양이다.

기자 역시 죽은 자의 추억에 종종 휴일을 바친다. 지난 주말에는 루돌프 바르샤이 지휘의 말러 교향곡 10번 음반(브릴리언트사 발매)과, 같은 작품을 담은 CD 몇 장을 비교하며 듣느라 시간을 보냈다.

‘죽은 자’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지만, 이 작품은 무덤에서 걸어 나온 음악이다. 말러가 땅에 묻힐 당시 ‘교향곡 10번’은 1악장만 완성된 형태였다. 나머지 악장들은 일부만 완성되거나 선율 부분만 쓰여 있었다. 오케스트레이션(악기 편성)은 물론 대부분 선율에 부가되는 화음마저 표시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작품 5악장 전곡이 처음 연주된 것은 말러가 죽고 53년이 지난 1964년에 이르러서였다. 음악학자인 데릭 쿠크가 말러의 스케치 악보를 오케스트라용 악보로 만들었던 것이다. 마치 해골만을 보고 생전의 얼굴을 복원한 것과 같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말러 같지 않은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러의 수법을 그대로 흉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르샤이가 지휘한 음반이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지금까지 들어온 쿠크의 악보가 아니라 바로 지휘자 바르샤이 자신이 새로 복원한 악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레모 마체티가 복원한 악보를 사용한 레너드 슬래트킨 지휘의 음반도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음악처럼 색채가 화려해서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3의 판본(板本)이 입수된 것이다. 온갖 타악기가 등장하는 바르샤이의 새 음반은 특히 2악장 스케르초 끝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철사(스네어)를 떼낸 작은북의 난타가 마치 우리 국악 같은 인상을 주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김에, 인터넷 클래식사이트인 ‘낙소스 뮤직 라이브러리’(www.naxosmusiclibrary.com)에 접속해 조 휠러의 악보를 사용한 로버트 올슨 지휘의 음반도 들어보았다. 휠러의 판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악장이 지금까지의 ‘아다지오’(느리게)가 아닌 ‘알레그레토’(약간 빠르게)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말러는 속도 표시조차 악보에 써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모양이다.

쇼핑도 하고 아이의 공부도 도왔지만, 주말의 대부분은 이렇게 지나갔다. 클래식의 세계는 항상 이렇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톡톡 튀어나온다. ‘파 들어갈수록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분야의 ‘마니아’ 또는 ‘오타쿠’들도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