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영화 ‘분노의 주먹’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미들급(72.5kg) 권투선수로 뛰다가 은퇴 후 100kg에 가까운 뚱보가 되는 역을 맡아 30kg 정도 살을 찌우고 빼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1996년 에디 머피는 영화 ‘너티 프로페서’에서 200kg에 이르는 클럼프 박사와 60kg대의 날렵한 버디 역을 같이 맡았다. 그러나 머피는 힘들게 살을 찌우거나 뺄 필요가 없었다. 특수 분장과 컴퓨터 그래픽이 몸의 변화를 너끈히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기술의 발달로 스크린에서 신체를 변형시키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됐음에도 굳이 고통을 감수하며 한두 달이란 짧은 기간에 살을 10∼20kg씩 찌우거나 빼는 배우들이 있다. 관객은 배역을 맡으면 철저히 그 인물이 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 복서 연기하려면 복서처럼 보여라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주인공 힐러리 스웡크는 극중 복서 역을 소화하기 위해 촬영 전 3개월 동안 몸무게를 9kg 정도 늘렸다. 단지 살을 찌우는 것이라면 놀랄 만한 신체의 변화는 아니다.
그러나 강도 높은 훈련과 맨몸을 드러내며 싸우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체중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근육이 필요했다.
스웡크는 체중 조절을 위한 특별 트레이너를 두고 하루 2∼3시간 복싱 연습과 체력 훈련을 했다. 또 엄격한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어떤 때는 매일 50g의 지방만 섭취하는 등 철저히 다이어트를 했다.
운동과 식이요법만이 아니었다. 좋은 몸과 근육에 필요한 충분한 휴식을 위해 하루 평균 9시간 잠을 잤다. 수면 후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간 셰이크를 마셨다. 그 결과 훈련을 시작했을 때 50kg이었던 스웡크는 훈련을 끝내고 촬영에 들어갔을 때 근육이 멋지게 덮인 59kg의 복서로 변했다.
스웡크는 “훈련은 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까지 나를 밀어붙였다”며 살찌우기의 고통을 밝혔다.
복서가 되기 위해 스웡크가 체중을 늘렸다면 최민식은 반대로 살을 뺐다. 단, 몸에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둘에게 주어진 공통 과제였다.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에서 퇴물 권투 선수 역을 맡은 최민식은 극중 자신의 체급인 웰터급(67kg 이하)에 맞추기 위해 평소 체중에서 10여 kg을 뺐다.
최민식은 권투 코치를 트레이너로 두고 복서가 되는 훈련과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두 달여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주 5회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따랐다. 400m 트랙 10바퀴 돌기 및 웨이트 트레이닝 등 체력 훈련과 3분씩 줄넘기 4회, 섀도 복싱 5회, 샌드백 치기 5회, 미트 10회 등 실제 권투 선수들의 훈련 스케줄 그대로였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 식단도 고단백 저칼로리 위주로 짰다. 닭 가슴살이나 달걀 흰자, 두부 등을 주로 먹고 오후 7시가 넘으면 야채나 과일만 먹었다.
○ 살 찌기 위해 도넛 입에 물고다녀
영화배우 설경구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배역에 맞춰 체중을 급격히 줄이거나 빼는 것으로 유명하다. 잦은 신체 변형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설경구 자신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화 ‘역도산’을 찍을 때 설경구는 무려 28kg을 불려 94kg의 육중한 레슬러의 몸을 만들었다. 그는 단기간에 살을 찌우기 위해서 하루 대여섯 끼씩 먹었고, 끼니마다 튀김, 탄수화물, 육류 등 먹고 싶은 것을 먹되 폭식이 아니라 자주 먹었다고 한다.
또 밤에는 술을 많이 마신 뒤 그대로 잠들기도 했다. 그러나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과 탁구, 농구 등 운동을 병행했다.
역도산이 끝난 뒤에 출연한 ‘공공의 적 2’에서는 강인하고 날렵한 검사 역을 소화하기 위해 15kg 정도를 한 달 만에 뺐다. 방법은 덜 먹고 무조건 뛰는 것. 배가 고플 때는 오이나 두부를 먹었지만 보통은 굶거나 물배를 채우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헬스클럽에서 땀을 빼거나 보라매 액션스쿨에서 축구, 농구를 하는 등 운동은 빠짐없이 했다.
한국에 설경구가 있다면 미국에는 르네 젤위거가 있다.
지난해 말 국내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열정과 애정’에서 뚱뚱하고 펑퍼짐한 30대 노처녀 브리짓 존스로 나온 젤위거는 평소보다 11kg을 살찌워 60kg대 초반의 몸무게를 만들었다.
젤위거는 “열량이 높은 도넛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말했다.
젤위거는 이 영화의 전편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년)를 찍기 위해 평소 45kg에 불과하던 몸무게를 63kg까지 늘렸다. 젤위거는 이 영화 촬영 뒤 바로 찍은 영화 ‘시카고’에서는 다시 몸무게를 50kg까지 줄여 쇼걸의 역할을 멋지게 해냈다.
상을 받기 위해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알면서 살을 찌우거나 뺀 것은 아니겠지만, 영화제는 이들의 신체 변형 노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스웡크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공교롭게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늙은 창녀 역을 위해 살을 13kg이나 찌운 샤를리즈 테론이 받았다. 젤위거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시카고’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전문가가 조언하는 살빼기 노하우…“매일 4km 걸으면 몸무게 ‘쏙’”▼
‘주먹이 운다’ 촬영을 위해 10여 kg을 뺀 최민식에게는 김지훈(27) 서울체육고 복싱 코치가 있었다. 1998년 복싱 라이트급 국가대표를 지낸 김 코치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여 동안 최민식의 감량과 복싱 트레이닝을 맡았다.
저녁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일반인들을 가르치는 김 코치에게서 건강에 무리 없이 살을 빼는 노하우를 들었다.
▽운동=뛰는 것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 기구 없이 몸으로만 하는 운동으로도 굉장한 몸을 만들 수 있다. 근처 공원 등 뛸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거리를 정해 놓고 완주하겠다는 마음으로 걷거나, 조깅을 하거나, 뛴다. 걷는 데는 최소 4km, 뛰려면 3km 정도가 적당하다. 일주일에 3회 이상을 하면 기본 골격이 갖춰진다.
▽식단=잠자기 3시간 이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과일도 피하는 것이 좋다. 단 자기 전에 너무 배고플 때는 과일을 먹지만 바로 자서는 안 된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무조건 하루 세끼를 먹을 필요는 없다. 아침을 걸렀다면 거른 대로, 꼭 먹어야 한다면 먹는 대로 하면 된다. 야채 종류를 많이 먹고, 특히 포만감을 주는 샐러드가 좋다. 술이 제일 문제인데 다음 날 꼭 땀을 빼주는 수밖에 없다.
▽휴식=동적인 행위만 하지 않으면 뭘 하든 상관없다. 낮잠이나 간단한 체조도 좋다. 잠은 6시간 이상이 좋다. 운동을 격하게 했어도 수면을 늘릴 것까지는 없다. 같은 시간이더라도 푹 잘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결국 마음가짐이다. 다이어트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담배를 끊는 것과 같이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일주일만, 딱 일주일만 운동을 하면 그 뒤는 몸이 알아서 적응해 버릇처럼 운동을 할 수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