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일본의 한계인가.’
일본 시마네(島根) 현 현청 소재지 마쓰에(松江)에서 기자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안이 현의회에 상정된 지난달 23일도, 가결되기 전날인 15일도 이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다.
‘한류(韓流), 한류’ 하는 법석 속에서도 메워지지 않는, 한일 간의 역사 인식 차이 때문이었다.
조례 제정에 앞장선 시마네 현 의원들은 일제가 1905년 독도를 자국 영토로 선포한 사실만 알았지, 5년 뒤 한반도를 몽땅 강탈한 역사는 몰랐다. 모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모르는 듯했다.
현청 앞에서 ‘조례 찬성’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하던 공직자 출신의 70대에게 물었다. 1905년이 어떤 해였던가.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됐던가?” 당시 한국의 국가명을 물었다. 묵묵부답.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얼버무렸다. 한일 관계사를 모르니, 한국 측의 반응을 어찌 이해할까. 일본인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할 때는 가만히 있었느냐. 역사적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란 걸 인정한 게 아니었나. 이제 와서 딴소리하는 한국이 이해가 안 된다.”
역사에 무지한 일부 일본인만, 국수주의 단체 회원만 이러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 하 창씨개명, 강제 징병과 징용, 한글 박탈 등 한국인들이 겪었던 가혹한 역사를 그나마 이해한다는 지식인들도 독도에 관해서는 똑같은 말을 한다.
독도 문제뿐만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왜곡, 전쟁 성노예, 동해 표기, 평화헌법 개악,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이웃인 한국인과 중국인에겐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일본인들은 그걸 보지 못한다. 아예 보려 하질 않는다.
“오늘도 한국에서는 손가락 자르고 일장기 태우며 데모합니까?”
조례안이 확정된 뒤 한국 취재 경험이 많은 일본 기자들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벌 떼처럼 떠들다 이내 잠잠해지는 게 한국인들의 ‘냄비 근성’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오늘 밤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조헌주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