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유럽 음악 기행]伊 티볼리

입력 | 2005-03-17 15:47:00

티볼리 계곡에 세워진 빌라 데스테. 건축가 리고리오가 기존의 수수한 베네딕트 수도원을 개축하고 분수와 정원으로 단장한 것이다. 사진 정태남 씨


로마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 황제의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 황제(76∼138)는 국경을 넓히는 것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뛰어난 군인이자 탁월한 정치가였고, 미술 건축 문학 등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치세 21년 동안 12년을 로마 제국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여행했다.

서기 123년경, 그는 고대 이집트의 웅장한 건축에서부터 섬세한 그리스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고 느낀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이하며 인상 깊은 것들을 모아 로마 동쪽 30km에 있는 고도 티볼리에 재현했다. 하드리아누스의 거대한 별장이 ‘빌라 아드리아나’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 빌라 아드리아나는 폐허가 되어 완전히 잊혀졌다가 15세기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 황제의 별장… 추기경의 테라스식 정원

16세기의 일이다. 티볼리 지사로 페라라의 추기경 이폴리토 데스테(1509∼1572)가 임명되었다. 그는 빌라 아드리아나의 유적 발굴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집무실에 불만이 많았다. 화려한 궁정생활에만 젖어 있던 그로서는 수도원을 개조한 수수하기 그지없는 집무실과 관저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리스트의 기념석판. 그는 속세를 떠나 빌라 데스테에 머물면서 내면의 세계로 향하는 창작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당시 유명한 건축가 피로 리고리오에게 위임하여 기존의 건물을 개축하고 기이한 형태의 분수와 숲으로 이루어진 테라스식 정원으로 단장하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티볼리의 명소 빌라 데스테(Villa d'Este)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중심에 있는 티볼리 공원도 바로 이곳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1861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못지않은 영원한 여행자가 티볼리를 찾아왔다. 피아노 음악의 세계에서는 황제와 다름없는 인물, 리스트였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와 매력적 외모를 갖추고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아 흥분의 극치로 몰아갈 줄 아는 마력이 있었다. 빌라 데스테의 입구에 있는 그의 기념 석판에는 헝가리식으로 ‘리스트 페렌츠’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독일식이라면 ‘프란츠 리스트’가 되겠지만.

그는 열 살 때 고향 헝가리를 떠나 거의 60여 년을 파리, 로마, 바이마르 등지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연주여행했으며 가는 곳마다 최고의 찬사와 갈채를 받았다. 그러한 리스트가 수수한 검은 수사복 차림으로 티볼리에 왔던 것이다.

여자들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여러 여인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그가 종교에 귀의하자 바티칸의 호엔로에 추기경은 그를 빌라 데스테에 머물도록 배려했다. 리스트는 이때부터 나머지 20년의 생애를 1년에 몇 달씩 빌라 데스테에서 보내면서 주로 종교적인 음악을 작곡하는 데 몰두했다.

○ 음표로 쓴 음악기행 名曲 ‘빌라 데스테…’

리스트는 음악기행을 썼다. 그의 음악기행은 글이 아니라 음표로 쓰여진 것이다. 피아노 모음곡집 순례의 해 1, 2 ,3집은 그의 대표적인 음악기행서인데, 제1집과 제2집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쓴 음악기행이고, 제3집은 같은 음악기행이지만 종교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집의 일곱 곡 중에서 빌라 데스테와 관계가 있는 곡은 ‘빌라 데스테의 사이프러스 나무에 부쳐’ 1번, 2번과 ‘빌라 데스테의 분수’이다. 리스트의 음악기행 중에서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히는 빌라 데스테의 분수는 화성 구조와 이 곡에서 느껴지는 음 빛깔이 마치 인상파 음악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하다.

빌라 데스테의 정원에 서면 아직도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와 분수가 여행자를 맞는다. 그 나무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이 녹아든 듯한 대지의 기운을 깊은 뿌리로부터 끌어내 가냘픈 푸른 나뭇가지 끝까지 높이 모아 올린다. 나뭇가지에서 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갖가지 형태의 분수에서 뿜어져 솟아 나오는 물보라와 어우러진다.

리스트는 속세를 떠나 자연의 소리가 오묘한 음악으로 들리는 이곳에서 창작의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도 그의 여행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내면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이었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염문 뿌린 리스트 말년엔 종교 귀의▼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리스트는 프랑스 고위관리의 딸 카롤린 드 생 크리크에게 마음이 빠져 있었으나 카롤린의 아버지는 딸을 다른 사람과 반강제로 결혼시켰다. 상처를 받은 리스트는 세상 욕심을 버리고 신부가 되려고 했다.

그 후, 여러 여인들과 관계를 맺지만 1847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지성이 넘치는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37세의 리스트는 작곡에 몰두하라는 후작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당시 최고 연주가로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정식 이혼을 하지 않은 후작부인은 우여곡절 끝에 리스트와 로마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지만 후작부인 친척들의 방해로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던 중 후작부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남은 것은 리스트와의 떳떳한 정식결혼뿐.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리스트가 종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파리시절 첫사랑의 상처를 받고 나서 신부가 되려고 했던 마음이 구체화된 것이었을까? 그의 발걸음은 티볼리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