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이 힘차게 활을 쏘고 있다. 그는 국궁으로 건강은 물론 마음 수련의 효과를 얻었다고 강조한다. 사진 제공 대성그룹
이른 아침 평온한 표정으로 대성그룹 김영훈(53) 회장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두 발은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무릎을 곧게 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숨을 고른다. 온몸의 중심을 허리에 집중하고 힘을 서서히 모은다.
그가 잡고 있는 것은 활, 바로 국궁(國弓)이다.
에너지 전문 기업인 대성의 김 회장은 벌써 10년이 넘게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집 뜰에 마련한 간이 활터에서 활시위를 당기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TV 사극에서 보면 단순하게 보이지만 활을 제대로 쏘기는 쉽지 않다. 활쏘기는 발 디딤, 몸가짐, 살 먹이기, 들어올리기, 밀며 당기기, 만작(滿酌·활을 최고로 당긴 상태), 발시(發矢), 잔신(殘身·화살은 몸을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면 안 된다) 등 8단계로 이뤄진다.
자세를 갖춘 뒤 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천천히 활을 쥐고 화살을 허리춤에서 빼어 시위의 절피(화살 꽂는 곳)에 끼운다. 손가락을 시위에 걸어 쥐는 살 먹이기 동작이 끝나면 천천히 활을 들어 올린다. 마치 아낙네가 물동이를 사뿐히 머리 위로 올리듯 가볍게 활을 들어 올린 뒤, 활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최대한 팽팽하게 만든다.
활쏘기에서 중요한 것은 양쪽 손끝뿐 아니라 팔 전체의 근육과 뼈, 등과 어깨까지 모두 움직이며 오로지 활에 집중하는 것이다. 곧게 세운 몸과 힘껏 밀고 당기는 동작 안에 절제와 힘이 숨어 있다. ‘만작’에 이르게 되면 숨을 고른다. 발시 과정에서는 가슴과 기력을 모두 모아 폭발하듯 활을 쏜다. 곧게 날아가는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에 명중한다.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곧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건다.
국궁은 우리 민족의 고유 정신과 얼이 담겨 있는 스포츠다. 신중하게 활을 당기고 시위가 극한까지 당겨졌다가 손에서 떠나는 순간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다른 운동 못지않다.
그의 국궁 애호론은 이렇다.
더 이상 당겨지지 않을 정도로 팽팽해진 시위를 통해 한계를 경험하며 겸손을 배운다. 또 활을 당겨서 만작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하고 화살이 손을 떠난 후에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다음 활을 다시 신중히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조의 여유와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한 번 활을 쏘면 보통 1시간 정도에 150여 발을 쏘게 되는데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몸뿐 아니라 마음의 수련도 돕는다고 한다.
그는 뜰 안의 활터뿐 아니라 서울 사직공원 뒤의 황학정, 서울 월드컵경기장 뒤 둔치에 위치한 상암정, 그리고 육군사관학교의 화랑정 등을 찾아 시위를 당긴다.
그는 오십견(五十肩)과 피로 때문에 국궁을 시작했다. 하지만 활을 배운 뒤 이런 불편을 잊은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그는 늘 지인뿐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는 기업인들에게도 활 쏘는 것을 권하고 직접 활을 선사한다. 이때 관심을 보이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직접 직원을 보내 사용법과 자세를 알려주기도 한다.
지난달 지인들과 함께 대구 팔공산의 팔공정에 있는 활터를 찾았다. 4∼6초 정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만작의 상태를 유지한 뒤 발사한 그의 화살이 정확하게 과녁 가운데를 뚫었다. 정확한 만작만이 명중 상태를 만들 수 있으며 만작에 이르는 과정을 소홀히 하면 결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일행들도 그의 열성적인 설명과 지도에 감복한 듯 활터에는 어느새 긴장감과 활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날 시위를 당기며 사람들이 얻은 것은 활 쏘는 방법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활 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와 한계에 이르도록 활을 당기며 느끼는 신중함까지 함께 배웠다.
홍종희 ㈜웰버앤컴퍼니 대표 lizhong@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