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복근무’를 이끄는 김선아는 순간순간 얼굴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여 만들어내는 표정연기로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 제공 아이필름
코미디와 ‘조폭’ 액션의 조합은 이제 한국 코미디 영화 장르의 확실한 한 축이 됐다. ‘코믹 조폭 액션물’이라고 부를 만한 이 장르는 영화 전반에 걸쳐 코믹한 일화와 우습지만 통쾌한 결투를 버무리다 결론에 이르러 주인공과 악한 조폭들의 처절한 싸움으로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는다. 그리고 자막이 올라가기 직전의 코믹한 장면은 서비스.
영화 ‘잠복근무’는 ‘조폭마누라’(2001년)와 ‘두사부일체’(2001년), ‘가문의 영광’(2002년)으로 이어지는 코믹 조폭 액션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성인이 고등학교로 돌아가 고교생들과 아옹다옹한다는 소재는 ‘두사부일체’와 맥이 닿고, 주인공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는 싸움 실력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조폭마누라’와 비슷하며, 확실하게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여배우의 기용은 ‘가문의 영광’과 통한다.
특히 ‘잠복근무’는 김선아라는 새로운 코미디 퀸의 원맨쇼에 많이 기대고 있다. 지난해 첫 단독 주연을 한 영화 ‘S다이어리’로 전국 17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여배우 원톱(one top)만으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김선아.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수사를 위해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위장 잠입한 여형사 역을 무난하게 해냈다.
경찰 강력반 형사인 천재인(김선아)은 조직의 보스 배두상(오광록)의 범죄 혐의를 법정에서 증언할 조직의 2인자 차영재(김갑수)가 실종되자 그의 고등학생 딸 승희(남상미)를 밀착 감시하기 위해 승희와 같은 반 학생으로 위장해 학교에 다닌다.
선생님으로 위장하기에는 공부가 턱없이 모자라고, 학창시절부터 싸움만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은 천재인에게 두 번째 고교생활이 순탄할리 없다. 첫날부터 반의 ‘쌈짱’ 혜령(홍수아)과 맞붙어 당연히 혼을 내주지만, 수학시간에는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지 못해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공부 못하고 싸움 잘 하는 전학생이 새 학교에서 겪을 만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학교 남학생 짱 무리와의 싸움이나, 청소년성매매를 하는 학생으로 오해받아 소문이 퍼지는 대목, 또 경찰의 힘으로 장학사들을 동원해 모의고사에서 커닝을 하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그렇다. 김선아는 그때그때 미간과 인중, 눈과 입을 적절히 찌그러뜨리는 얼굴 표정과 새침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말투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의 미덕은 여기까지로 보인다. 에피소드들은 그저 나열됐다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파편적인 웃음만 유발한 채 수명을 다한다. 또 학교 바깥의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는 가벼움과 진지함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조폭 보스 배두상의 캐릭터가 그렇다. 영화 ‘올드보이’ 첫 장면에서 최민식에게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넥타이를 잡힌 채 간당간당 서 있는 남성으로 나와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오광록은 과장된 몸짓과 엄숙한 톤의 문어체 말투를 구사한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보고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특히 영화는 결말로 치달으면서 너무 많은 이야기의 가지들을 짧은 시간에 쳐내느라 소화불량 직전까지 이른다. 한껏 폼을 잡으며 비열하고 위선적인 냄새를 풍기던 조폭 보스는 우스꽝스럽고 좀스러운 양아치 캐릭터로 돌변하고, 엄청난 무술 실력을 자랑하던 조폭 보스의 오른팔(이사비)은 천재인의 발차기 단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죽은 줄만 알았던 인물들은 마지막 순간 모두 살아있음이 드러나 허탈함마저 준다.
영화 ‘잠복근무’는 미국 할리우드에 판권이 팔려 어깨가 으쓱해진 선대(先代) 코믹 조폭 액션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고, 김선아의 코믹 연기 역시 물이 올랐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의 흥행여부는 한국 코믹 조폭 액션물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비슷한 ‘공식’으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지를 가늠해볼 만한 척도가 될 것이다.
참,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궁금한 것이 있다. 천재인과 같은 반에 전학 온 강노경(공유)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퇴마록’(1998년)으로 데뷔한 박광춘 감독은 ‘마들렌’(2002년)에 이어 이 영화가 세 번째 작품이다.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