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선제공격 독트린, 민주주의 확산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폴 울포위츠(61·사진) 미국 국방부 부장관이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됐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지명 사실을 발표하면서 그를 “(제3세계) 개발 문제에 헌신할 것이며, (세계은행 못지않게 큰 조직인) 국방부를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마음이 따듯한 괜찮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가 중동 지역 민주화 작업이 비교적 순항하는 이 시점에 왜 국방부를 떠나는지, 세계은행에서 추진할 구상은 무엇인지를 놓고 벌써부터 숱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제3세계의 빈곤 퇴치 및 평화 이루겠다”=울포위츠 부장관은 이날 워싱턴포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계은행이 정치와 경제 중 어떤 기준에 따라 운영돼야 하는지 잘 안다”고 말했다. 미국이 연 200억 달러(약 20조 원)에 달하는 세계은행 개발자금 대출을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용’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발언이다.
실제로 베트남전쟁 도중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은 세계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긴 뒤 냉전시대 친미 성향의 저개발국들에 ‘우호적 자금지원’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던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세계은행 이사국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외무장관은 “그를 추천한 것은 단지 ‘제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지명한 인사를 이사회에서 그대로 선출해 왔다. 제임스 울펀슨 현 총재는 5월 말 임기가 끝난다.
▽“네오콘이 떠난다”=울포위츠 부장관의 안보팀 이탈을 놓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배제’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세계은행 총재직은 체면 유지를 위한 자리라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존 볼턴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유엔 대사로 나가고, 올여름엔 더글러스 파이스 국방부 정책차관이 펜타곤을 떠난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즉 부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라이스 장관의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부시 외교팀의 갈등’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이중의 포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외교전문가들은 “네오콘 배제로 봐야 할지는 후임 부장관 인선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