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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서울]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암사동 점마을

입력 | 2005-03-18 17:50:00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 현수(권상우)는 연모하던 근처 여고의 3학년생 은주(한가인)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가출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현수가 은주의 집 앞에서 비를 맞으며 서 있다(아래). 영화 제작진이 현수와 은주의 집 주변 주택가를 찍은 장소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점마을. 2, 3층의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모습이 개발 전 강남의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 전영한 기자


1978년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 전학 온 모범생 현수(권상우)는 무지막지한 교내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유신 교육의 심화’라는 팻말 아래 엎드린 채 복장이 불량하다고 맞고, 3학년 교실에 끌려가 맞고, 선도부원에게 맞고, ‘1년 꿇은’ 동급생한테 맞고…. 학생이 교사에게 맞는 와중에 교사는 교장에게 맞고 그 교장은 3성장군인 학부모에게 쩔쩔 맨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 작)의 배경인 말죽거리(현재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무지막지한 개발을 앞두고 있었고 그 개발의 폭력은 사회 곳곳에, 학교에도 깊숙이 침입했다. 그때 힘없는 자들은 맞아도 군소리 못하고 지내야 했다.

자살까지 생각하던 현수는 절권도를 배워 자신을 괴롭히던 선도부원들을 옥상에서 쓰러뜨리고 내려와 교련 교사 앞에서 외친다.

“대한민국 학교들 X까라 그래!”

영화가 유하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감독 자신이 그 시절 강남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기에 영화 제작부원들의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개발 직전의 강남 분위기가 나는 곳을 서울에서 쉽게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

학교 주변 장면은 전북 전주와 군산, 정읍, 김제를 돌아다니며 찍었지만 남녀 주인공이 사는 주택가가 문제였다. 김제의 한 주택가를 후보지로 정하긴 했지만 감독이 “서울 느낌이 나지 않는다”며 마땅치 않아 했다고 한다. 아무리 20년 전의 모습이라도 강남의 주택가는 미묘한 세련미가 있었다는 것.

촬영 후반부까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제작진의 눈에 띈 곳은 강동구 암사동의 점마을이었다. 주변은 개발제한구역이어서 높은 건물이 없고 마당이 넓은 단독주택 16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다.

실제로 가 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은 쾌적한 주택가다. 골목은 조용한데 길거리 어디에나 햇볕이 잘 들고 새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담은 사람 어깨보다 낮거나 아예 울타리 식이어서 마당이 훤히 보인다.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느낌이지만 국적불명의 전원주택과 다르고 담이 높은 고급 주택가와도 다르다.

여유 있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인심도 좋은지 골목에서 차를 빼 달라, 개가 못 짖게 해 달라는 등의 제작진의 요구에 모두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의 마을을 밀어내고 강남에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섰다니 못내 아쉽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올림픽대로 방향으로 100여 m 더 들어가면 나온다. 선사유적지는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고 전시관이 잘 꾸며져 있어 가족과 함께 찾아가기 좋은 곳. 서울시와 강동구는 점마을 옆에도 3만3000여 평 규모의 역사생태공원을 조성 중이다.

서울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내려 선사유적지행 버스를 타면 된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