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노원구의 한 동사무소.
“신청한 서류 나왔으니까 꼭 찾아가세요.” 한 뭉치의 서류를 뒤적이며 공익근무요원이 분주히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졸업증명서, 호적등본 등 팩스민원을 신청해놓고 찾아가지 않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찾아가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
동사무소는 “찾아가지 않아 버려지는 서류가 한달 평균 30건 이상”이라며 “기다리다 못해 전화연락을 해도 ‘알았다’는 말뿐이어서 시간 자원 인력낭비가 크다”고 토로했다.
주부 장모(31) 씨는 최근 딸(4)이 감기에 걸려 서울 S병원 소아과에 오전 11시 진료예약을 했다. 진찰실 앞은 환자들로 만원이었다.
예약시간에서 40여 분이 지나도록 차례를 기다리던 장 씨가 “이래서야 예약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항의하자 간호사는 “예약을 해놓고 연락 없이 안 오는 환자가 많아 예약을 많이 받아둔 탓”이라고 답했다.
최근 3개월간 대한항공 국내선의 예약부도율은 13.4%. 예약해놓고 통지 없이 나타나지 않는 좌석수가 연간 250만 석 규모에 이른다.
이 경우 항공사는 빈자리로 운항하게 되고 이는 원가부담이 돼 요금인상 및 서비스 저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패밀리 레스토랑은 빈번한 예약 부도 때문에 손님이 몰리는 어린이날 등 기념일에는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예약 부도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되돌아온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김자혜(金慈惠) 사무총장은 “예약을 이행한 소비자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반면 예약을 부도냈을 경우 적절한 페널티를 도입하면 예약 문화를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연계에서는 ‘선(先)지불 예약’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예약부도율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초대권의 경우 여전히 골치를 앓고 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사전에 참석 여부를 확인해 초대권을 발행해도 막상 공연 때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해진 좌석의 1.5∼2배의 초대권을 발행하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예약 이행률이 90% 이상이며 예약 부도율은 4∼5%로 예약문화가 사회예절로 이미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성영신(成瓔信·심리학) 교수는 “예약은 일종의 약속인데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