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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3-18 18:34:00

그림 박순철


“지난 이틀 줄곧 한군 진채를 살피니 한신은 아무래도 한왕의 대군을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오고 있는 것이 얼마인지 모르나 한왕의 대군은 지난 번에 패왕의 도읍인 팽성까지 우려 뺀 적이 있다. 지금 이곳 군민으로서는 평성을 지켜내기 어려울 것이다. 한왕의 대군이 철통같이 에워싸기 전에 군사들과 함께 이 성을 빠져나가 조나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열이 그렇게 말하자 장수들 가운데 하나가 어두운 얼굴로 받았다.

“이미 한신의 대군이 사방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데 무슨 수로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한군의 배치를 보니 서북쪽은 에워싸고 있는 시늉뿐이고, 조나라로 돌아가는 길목이 되는 동남쪽에만 군세를 몰아두고 있었다. 따라서 서문이나 북문으로 나가면 큰 탈 없이 성을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쪽으로 가봤자 방금 한군의 손에 떨어진 마읍(馬邑)이 있을 뿐이고, 북쪽으로는 며칠 안가 흉노의 땅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사히 몸을 뺀다 해도 두 곳 모두 찾아가 의지할 땅이 못됩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한신이 북쪽을 비워둔 것은 장군의 말대로 그곳이 흉노의 땅으로 들기 때문인 듯하나 가만히 살피면 반드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흉노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오성(Y城)이 있고 또 연여(閼與)같은 읍(邑)도 있다. 특히 오성은 조나라의 별장(別將)인 척(戚)장군이 적지 않은 군사와 더불어 지키고 있으니, 먼저 그리로 가서 힘을 합친 뒤 동북쪽으로 길을 열어 내려가면, 당성(當城)을 거쳐 조나라로 돌아갈 수가 있다.”

하열이 거기까지 말하자 걱정하던 장수도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장수들도 나날이 불어나는 한군의 머릿수에 겁먹어 허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군말 없이 상국(相國) 하열을 따라 다음날 새벽같이 평성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내일 새벽 백성들을 동문과 남문 쪽으로 몰아 금방이라도 치고 나갈 듯 함성을 지르고 북을 울리게 하라. 그때 우리는 가려 뽑은 군사 1만 명만 이끌고 북문으로 나간다.”

그렇게 저희끼리는 제법 머리를 써서 성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런 성안의 움직임을 한신이 못 느낄 리 없었다. 그날 밤 자정 무렵 장이와 조참을 가만히 불러 말했다.

“저것들이 생각보다 빨리 성을 버릴 생각인 듯하오. 성안이 수런거리는 게 아마도 오늘밤 움직일 듯싶소. 조장군께 날랜 군사 1만 명을 딸려줄 터이니 상산왕과 더불어 가만히 길을 돌아 하열이 달아날 북쪽 길목을 막으시오. 상산왕께서 길을 잡아주시면 하열을 잡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오!”

이에 조참과 장이는 말발굽을 헝겊으로 싸고 하무를 물린 군사 1만과 함께 진채를 나섰다. 어둠 속에 한 시진이나 길을 돌아 평성 북쪽에 이르자 조참이 장이에게 물었다.

“상산왕께서는 오래 이 땅을 다스리신 적이 있어 지리에 밝으실 것이오. 보시기에 평성 북문을 나온 하열이 어디로 달아날 것 같소?”

“아마도 오성 쪽일 것입니다. 오성은 전부터 조나라가 별장을 보내 지키던 곳이니 그들과 힘을 합쳐 조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열려 하겠지요.”

장이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조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