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엄마가 된 1년 사귄 카페 친구 약백이
대전에 사는 32살의 자칭 노총각 우수한(가명)씨는 지난 6년간 맞선을 모두 100번 가량 봤다. 이 가운데 대략 2번은 퇴짜를 놓고 나머지는 퇴짜를 맞았거나 서로 무관심했단다. 100번이나 맞선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는 맞선을 보면서 경험했던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글로 옮겼다. 이번에 9회째 글을 내보내며 앞으로 12회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9)인터넷 카페
1년 만에 우연하게 만난 친구, 결국 한마디고 못하고 헤어져…
많은 사람들이 봄, 가을을 결혼 시즌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특별히 철도 없나 보다. 새해 들어 주변에 결혼소식들이 너무 많다. 동료, 친구, 후배들... 봄, 가을 결혼식장이 붐벼서 그런지 아니면 속도위반이라 불러오는 배를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뭐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건 사시사철이 전부 결혼 철인가 보다.
나는 남의 결혼식을 끝까지 본적이 거의 없다. 내가 사회 봐주는 결혼식이야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지켜봤지만 남의 결혼식가서 솔직히 축하해 줄 기분도 아니고 그냥 봉투내고 얼굴 도장 찍고 바로 식당으로 향해 꾸역꾸역 식사하고 나온다.
뭐 솔직히 친구, 동료, 후배들 결혼식 다니는 것 창피할 것도 없고 부러울 것도 없다. 워낙 달련이 되어 있으니 정말로 무덤덤한 마음으로 밥 한 끼 먹으로 간다는 생각 외에는 말이다.
◈우연한 회식자리에서 말이 나온 그녀는 인터넷 카페 친구였다.
얼마 전 시골 사는 후배 놈 아버님 회갑잔치에 간적이 있었다. 도시에서야 특별히 회갑잔치 안하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회갑잔치가 동네잔치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 찾아간 회갑잔치 집에서의 내 모습은 정말로 내가 생각해도 처량했다. 후배 놈은 부인에 아들까지 떡하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주고 손님 맞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데 어찌나 목이 메던지...
오늘도 넋두리가 길었다. 이번 얘기는 1년간의 메일 교환...그리고 만남이다. 나는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도 시간과 약속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즉흥적이다.
“어디냐? 뭐하냐? 밥이나 같이 먹을래?”
뭐 이런 식이다.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새삼스럽게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나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물론 어른들과의 모임에는 철저하게 미리 약속을 하지만 말이다.
이런 까닭으로 요즘 유행한다는 뭐 인터넷 동호회다 카페라는 것에 관심은 있지만 가입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일 때문에 피치 못하게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했었다. 그리고 열심히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카페 활동에 참여했다. 뭐 카페 활동이라고 해봐야 게시판에 글 올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재미있는 사진이나 동영상 있으면 올려놓고 하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 달 지났을까. 카페를 회원들이 점점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워낙 처음에는 회원수가 적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대부분 아줌마 회원인데 그중에 총각회원이 들어와 활발한 활동을 벌이니 얼마나 신선하고 귀여워 보였겠는가.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나 아줌마들한테는 먹히는 스타일이다...ㅋㅋㅋ
원래 아줌마들 많으면 그런 것 있잖은가. 괜히 처녀, 총각 엮어주려는 분위기 말이다. 분위기 중에 가장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엮어주는 분위기. 마침 카페에는 특별회원 대우를 받고 있는 한 아가씨가 있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 그렇다 보니 나도 그녀에게 조금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뭐 내용은 별게 없었다. 날씨, 회사, 가족 얘기 등 특별한 주제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메일 친구로 서로 부담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 때문에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전화통화도 몇 번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카페에서 정모도 가끔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만 하더라도 하던 일이 평일, 주말이 따로 없이 일을 했기 때문에 정모는 거의 나가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이제부터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 왜 자꾸 오버랩 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메일친구로만 지내던 그녀와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월드컵의 열기가 체 가시지 않은 2002년 8월쯤으로 기억된다.
우장추(우수한 장가보내기 추진위원회)회원들과 모처럼만에 회식을 하고 있었다.
저녁이다 보니 적당히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한 참 무르익을 즈음... 모임에 참석한 회원 중 중추세력의 한 분인 박 부장님이 말을 꺼냈다.
“우리 우수한이 장가보내야 되는데. 우리 회사에 괜찮은 얘 없나?”
옆에 있던 우장추 회장님이신 진 여사님까지(연세가 50을 넘기셨기 때문에 평소에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거든다.
“그래, 우리 회사에 소개 시켜줄 만한 처녀 있나 한번 찾아 봐야겠다. 자기는 어떤 여자 스타일 좋아해”
“뭐, 스타일이 있나요. 사람은 만나봐야 알지. 만나기도 전에 이미 선부터 긋고 만나면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주변에 아가씨 한번 찾아보세요...^^”
그러자 다시 술잔을 기울이시던 박 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마디가 내 전신을 자극했다.
“가만있어봐. 우리 회사에 누가 있더라. 지선이가 몇 살이지?”
지선... 방금 지선이라고 했다. 나와 1년 가까이 메일을 주고받던 그녀. 얼굴은 단 한차례 보지 못했지만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그녀.
술이 번쩍 깼다.
“부장님, 지선이라고 하셨어요?”
“어, 왜 아는 사람이야?”
“예... 그냥 조금 아는 사람인데요”
모임에 참석했던 우장추 회원들도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주시했다. 하긴 놀랄 만도 했을 것이다. 자기회사에 다니고 있는 처녀 사원을 연애 한번 못해본 나 같은 놈이 안다니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했는데 거기서 같이 활동하는 회원입니다. 가끔 가다 메일 교환하고 뭐 그런 사이죠. 잘 알지는 못해요. 그저 이런 사람이 있구나. 정도죠”
회원들 표정이 다들 밝아진다.
“야. 이거 인연이다”
“전화해서 나오라고 해”
이쪽저쪽에서 난리들이다. 이런 주변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박 부장님이 전화기를 들었다.
“내가 나오라고 해야겠다. 지선이가 또 내말을 잘 듣거든”
“부장님, 전화 하지 마세요. 괜히 저 있는 자리라고 하면 부담가질 텐데. 그리고 시간이 늦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속으로야 나도 얼마나 그 아가씨의 얼굴을 보고 싶었겠는가. 단지 멍석을 안 깔아 줘서 그렇지. 또,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 아가씨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 늦기는 뭐가 늦어 8시 밖에 안됐구먼. 걱정 하지만, 나보러 나오라고 하면 나올거야. 너 있다는 소리 안해”
박 부장님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지선이니. 나 박 부장이다. 어디냐? 벌써 집이냐. 우리 팀 오늘 회식하는데 나와라. 너한테 할 얘기도 있구. 여기 둔산동이야. 근처 와서 전화해”
전화를 끊자마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질문들.
“나온데요?”
“어. 나온데. 한 30분만 있으면 올 거야”
30분후면 그녀를 볼 수 있단다. 메일로 주고받았던 글의 내용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나는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얼굴은 붉게 상기 됐고 눈동자는 많이 풀려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수한. 첫 만남인데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얼른 술을 깨자’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 바로 세수를 했다. 그러나 이미 붉게 물든 얼굴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30분후 회식자리에 그녀가 모습을 보였다. 얼핏 보아도 170cm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키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그녀가 자리에 합석을 하고 낯선 나에게 약간의 경계심과 함께의 관심을 보였다.
“지선아. 인사해라. 우수한이다. 너도 안다면서”
박 부장님이 나의 정체를 말하자 그녀가 놀라며 나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목례만 한 후 얼굴도 들지 못하고 엄한 바닥만 쳐다보며 서먹서먹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는 그렇게 온라인상으로만 메일을 주고받다가 오프라인 상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대하니 떨리고 설레고 긴장이 되는데 그녀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근처 노래방을 찾았고 거기서 나는 정말 열창을 했다. 그녀가 듣고 있다는 생각에 평소에는 속된말로 삑사리 나던 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노래 선곡도 친구들이나 편한 사람들끼리 가면 분위기 띄우려고 부르던 트롯토가 아닌 분위기 있는 발라드로만 골라 부르는 등 그녀를 무척 의식했던 것 같다. 그렇게 노래방에서도 아무 일이 없이 그날 회식은 마무리 됐다.
그러나 회식이 끝나고 집에 오는 동안 뭔가가 허전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가 우수한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그쪽에서는 나에게 무진장 관심을 가지고 서로 그동안 온라인으로 나누지 못한 대화를 나눠야 뭐 이야기 전개가 맞아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역시 현실과 이상은 같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사만 나눈 후 그녀와 회식자리에서는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이게 아닌데’
이말 외에는 그때 그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단어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원래 뭐든지 처음이 힘든 거야. 첫 만남에서 많은 것을 기대 하면 안되지. 그냥 오늘은 얼굴 익히는 정도로 만족해야지’ 나는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녀와의 첫 만남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일 때문에 그녀가 일하는 직장을 찾았다. 한번 얼굴 텃으니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대하며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저 우수한입니다. 회사에 일보러 왔다가요 시간이 남아서요. 로빈데 잠깐 뵐 수 있을까요”
그녀는 하던 일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고 하곤 5분정도가 지난 뒤에 로비로 나왔다.
다시 봐도 키가 무척 컸다.
“그냥 회사 들어 왔다가요 음료수나 얻어먹고 가려고요”
“네. 지금 하던 일이 있어서 오래 못있어요”
“아...그러세요. 그날은 잘 들어 가셨죠?”
“예. 잘 들어갔어요”
분위기가 진전이 없다. 그저 안부 물으니 끝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캔 음료를 단번에 들이키고
“바쁘시면 올라가서 일보세요. 저도 올라가서 일봐야 되겠네요”
“네 그러세요”
이게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그 후 이메일 교환은 거의 없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 전화통화도 당연히 없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봐도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허전하다. 아니 허탈하다. 아쉬움 뭐 이런 단어조차 쓸 수 없는 그런 느낌 이었다.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만난 만남치고는 결과가 너무 허무하다. 그동안 TV나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다. 접속이나 뭐 이런 영화를 보면 컴퓨터 통신을 통해서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아니 나도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작년 2월에 일 때문에 그녀와 통화를 하게 됐다.
시집가서 애 낳고 잘산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충고 아닌 충고 한마디를 해줬다.
“우수한씨는 여자 사귀려면 무조건 첫 만남에서 노래방을 데리고 가세요”
오늘의 소개팅 원칙 하나
영화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영화나 드라마다. 온라인을 통해 정을 쌓아 놓고 오프라인서 만나 사랑을 키우는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접속’의 영화 주인공을 꿈꾸며 지금도 온라인에서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 물론 현실에서도 ‘접속’처럼 멋진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현실에서 그러한 극적인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본다. 온라인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을 오프라인에 있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쏟아 붓는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