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로 돈 번 회사가 먹는 물을 망쳐놓다니….”
1991년 3월 21일 이른바 ‘페놀 사태’의 주범으로 두산전자 구미공장장 등 6명이 구속됐다. 페놀은 전자기판을 만드는 수지의 원료로, 농약 제조에도 쓰이는 독성 물질이다. 영남 주민들은 낙동강 오염의 주범이 국내 최대의 ‘물장사’였음이 밝혀지자 경악했다.
이들은 넉 달이 넘게 페놀 폐수를 낙동강에 버렸다. 한 달 500만 원의 비용을 아끼려 한 것. 3월 중순 페놀 원액을 왕창 누출시키는 ‘실수’만 없었으면 들통 나지 않았을 범죄였다.
원액 유출 직후 대구 수돗물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시는 강물에 페놀이 섞여 소독을 많이 했더니 나는 냄새라고 해명했다. 페놀은 당시 먹는 물 수질조사 항목에도 없었다. 아이에게 분유를 타 먹여도 되겠느냐는 주부의 질문에 대구시는 “잘 모르지만 먹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시민들은 어이가 없었다.
‘페놀 강물’이 내려가면서 부산까지 악취에 시달렸다. 약수터는 북새통을 이뤘고 생수가 품귀현상을 빚었다. 당시 내국인 판매가 불법이었던 생수는 이 사건 5개월 후 합법화된다. 국민들은 수도료 납부 거부와 두산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정부는 두산전자에 30일간 조업정지 처분이라는 조치를 내림으로써 여론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나 다음달 ‘2차 페놀 사태’가 발생하자 국민의 분노는 폭발했다.
생산 차질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상공부의 입김으로 두산전자의 조업정지는 중도 해제됐다. 그러나 조업재개 5일 만에 두산전자는 또 페놀을 누출시켰다. 노후시설을 교체해 오염사고가 없게 하겠다던 장담은 허언(虛言)임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슈퍼마켓 주인들부터 매장에서 두산 제품을 치웠다.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은 결국 물러났다. 정부는 환경처 장차관을 모두 경질했다. “대기업을 감싼 부처는 따로 있는데 왜 우리만….” 풍비박산 난 환경처는 목이 멨다.
고도성장의 그늘을 인권 측면에서 일깨운 게 전태일 사건이라면, 페놀 사태는 환경과 기업윤리라는 면에서 경종을 울렸다. 비양심적 기업과 무능한 정부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간접살인’의 공모자였던 것이다.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