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 KB자산운용 사장(전 메릴린치증권 한국담당)은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에 오면 반드시 PC방에 데리고 간다. 한국의 정보기술(IT) 수준을 보여주는 데 이만한 현장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디서든 ‘잘 뚫리고’ 비용도 저렴하다. PC방 요금이 시간당 1000∼1500원에 불과하다.
최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IT 전시회 ‘세빗(CeBIT)’에 다녀온 한국 기자들은 모두들 독일의 낙후된 인터넷 환경에 실망했다고 한다. 별 5개짜리 호텔에서도 인터넷을 쓸 수 있는 PC가 거의 없었다는 것.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지갑이나 핸드백을 카드 인식기에 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것이다. 미국에도 교통카드 기능을 하는 신용카드가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할 만큼 일반화 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현금을 내는 승객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요즘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얘기 가운데 하나가 “살 만한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몇년 사이에 한국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코끼리밥솥 사러 일본에 간다는 사람을 이젠 찾을 수 없다. 골프 치거나 온천욕 하러 간다는 얘기는 자주 듣지만.
한국 기업의 미래에 대해 한국인보다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외국인들이다.
세계적인 IT 분석가이자 미래학자인 조지 길더 씨는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은 이제 리더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갖췄다. 한국은 차세대 디지털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예찬했다.
‘IT 인프라’가 21세기 고속도로라면 한국은 이 고속도로가 매우 잘 깔려 있다. 통행료(비용)도 무척 싸다. IT 강국이 될 만한 조건이다.
IT뿐만이 아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같은 굴뚝산업도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한국만큼 구경제와 신경제가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나라는 드물다. 동남아시아에는 마땅한 ‘산업’이 없고 일본은 이제 겨우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유럽은 ‘늙은’ 대륙이고 미국은 갈수록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기업은 사실 몇 개 안 된다. 반(反)기업정서가 참여정부 들어 악화하는 조짐도 보인다.
그래도 세계는 한국을 주목한다. 정보통신 인프라와 기술에서 앞섰을 뿐 아니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먼저 구입하고 소비하는 개방성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국 경제에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대목이 이처럼 많다. 문제는 이런 장점과 잠재력을 묶고 통합해 국가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정치권과 정부의 능력일 것이다.
이강운 경제부 차장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