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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강형구]이젠 우리가 ‘손기정’을 노래하자

입력 | 2005-03-21 18:25:00


독일의 한 클래식 재즈밴드가 손기정 선생을 위한 곡을 만들고 헌정해 앨범으로 발매한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슈투트가르트 음대 출신의 5인조 재즈밴드 살타첼로(SaltaCello)로, 한국의 전통음악과 유럽풍 재즈를 결합해 많은 사랑을 받는 중견 밴드다.

최근 모 TV 방송에서 그들이 어눌한 한국어로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살타첼로가 이처럼 한국을 노래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역동성 속의 여유’와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마라토너 손기정에게서 매력을 느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들이 손기정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인터넷으로 떠돌던 독일인 슈테판 뮐러의 글이었다고 한다.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민족의 기상과 일제강점 하의 베를린 올림픽, 그리고 시상대 위에서 한없이 슬퍼 보였던 젊은 마라토너의 표정….

24세의 젊은 마라토너는 나라 잃은 조선 민중의 희망을 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 게르만의 땅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1936년 8월 9일, 숨이 차오르는 37km 지점 비스마르크 언덕을 넘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러나 그 순간 알지 못할 설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시상대에서 받아든 월계수 나무로 일장기가 가려지길 바랐지만, 또렷하게 들려오는 기미가요는 가릴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올림픽 출전을 후회하게 만든다.

독일의 한 밴드가 손기정 선생을 기리는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의 영웅이었던 그를 현실의 영웅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아쉽다. 사진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 선수가 굳은 얼굴로 시상대 위에 서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나는 살타첼로를 만나게 되면 손기정 선생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그에 대한 외국 재즈밴드의 관심과 애정에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우리 기억 속에서 손기정은 어떤 존재이던가. 일제강점 하 2300만 조선 민중에게 손기정은 민족의 영웅 이상이었고, 어느 누구보다 애국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인물로만 기억되고 있다.

올해는 광복 60주년과 한일수교 40주년이 겹칠 뿐 아니라,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도와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일 간에 갈등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거 문제의 청산이 해결 과제로 남아 있는 현 시점에서 항일(抗日)에서 극일(克日), 협일(協日)로 이어져 온 대일 관계로부터 우정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시험하고 있다.

아직 일본과 미래를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보이기에 어느 때보다 지혜로운 선택과 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앞서 고난의 역사 속에서 조국을 사랑했던 손기정이란 인물을 과거가 아닌 현실의 영웅으로 기억해야만 한다. 동시에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 최종주자의 영예를 16세 임춘애에게 양보하고 릴레이 주자로 나서면서도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뛰어 들어오던 다정한 할아버지 손기정을 기억해야 한다.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손기정 선생은 기록상의 국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손기정 선생은 생전에 “황영조가 정실 자식이라면 나는 의붓자식이여”라고 말하곤 했다. 일장기를 달고 뛰었기 때문에 황영조에 비해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았다.

살타첼로의 노래 ‘위대한 손기정’과 ‘다이내믹 코리아’가 우승의 영광을 조국 앞에 온전히 바치지 못하고 떠난 고인의 한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길 빈다. 하지만 손기정과 한국을 위한 노래는 이제 외국의 밴드가 아닌, 우리가 나서서 세상에 불러 줘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강형구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