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문희성을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여름. 현대 유니콘스의 전신인 도깨비 실업팀 현대 피닉스가 1995년 프로에 입단할 유망 신인을 싹쓸이해 잠적하는 소동을 일으켰을 때였다.
당시 기자는 이들의 은신처를 파악해 설악산에서 동해안 끝 마을인 강원 고성까지 심야 추격전을 벌였다. 이제야 밝히지만 당시 연락이 닿았던 이는 SK 조경환이었다.
그때 선수단 버스 창 너머로 머리 하나는 더 올라와 있어 한눈에 들어왔던 선수가 바로 홍익대 거포 문희성이었다. 195cm에 110kg의 거한. 큰 체격과 달마대사를 닮은 우락부락한 인상에 걸맞게 그의 배팅 파워는 일품이었다.
그러나 문희성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년을 실업팀에서 묵은 뒤 1997년에야 지명 팀인 두산에 합류한 게 치명타가 됐다. 변화구만 들어오면 연방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공갈포’라고 놀려댔다.
올해로 어느덧 프로 9년째, 실업 시절까지 포함하면 11년째. 스타 출신일수록 프로에서 빛을 보지 못할 경우 단명에 끝나는 게 상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문희성의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었다. 2군 리그에선 해마다 트리플 크라운 급의 성적을 냈지만 자신의 포지션인 1루나 지명타자엔 우즈와 강혁이 버티고 있었고 좀 할 만하면 군 입대를 하든가 어깨수술을 받아야 하는 불운이 겹쳤어도 그는 꿈을 접지 않았다.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지난겨울 고육지책으로 외야수로 전향한 문희성은 주전을 꿰차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고 있다. 시범경기 타율 0.294에 1홈런 4타점으로 팀 내 최고 성적.
“올해 연봉이 20세 신인이랑 별 차이 없는 4700만 원입니다. 저희 동기들은 벌써 자유계약선수가 돼 몇 십억씩 벌었죠.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
두 아이의 아빠로서 30대 중반의 중고 신인을 자처하는 문희성. 잠실구장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그의 미소가 기자의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춘 하루였다.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