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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街 막전막후]박근혜대표 취임 1년

입력 | 2005-03-22 18:06:00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23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박 대표는 지난해 탄핵 후폭풍으로 좌초하던 한나라당의 선장을 맡아 아버지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본인의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4·15총선에서 121석을 건져내 보수층의 ‘잔다르크’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후 과거사 논란과 국가보안법 개폐를 놓고 벌어진 보혁 논쟁, 행정도시법을 둘러싼 당 내홍(內訌)을 거치며 그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1기(취임∼작년 8월)▼

박 대표는 취임 초기 상생의 정치를 표방하며 이전의 대여(對與) 강경 투쟁 노선과 선을 그었다. 남경필(南景弼) 원희룡(元喜龍) 의원 등 개혁소장파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개혁적 보수 노선을 택했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차별화된, 절제된 언변과 박순천(朴順天) 여사 이후 최초의 정당 대표라는 점 등이 겹쳐 유력한 차기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의원 등 재야 그룹은 그를 ‘독재자의 딸’이라며 인정하지 않았으나, 박 대표의 ‘구당(救黨) 프리미엄’을 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대표는 당시 일각의 사당(私黨)화 주장에 “내가 부모가 있느냐, 자식이 있느냐. 아무 욕심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2기(작년 8월∼12월)▼

지난해 8월 여권의 정수장학회 의혹 공세 이후 박 대표는 보수로 돌아섰다. 그는 이즈음 “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흔들면 전면전을 선포하겠다”고 말한 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개 쟁점법안 및 한국형 뉴딜 3법에 대한 여야 협상에 ‘원칙’과 ‘안보’를 중시했다.

당시 박 대표의 ‘원칙’이 여야 간 협상 결과를 압도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당내 개혁 및 일부 중도파와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

개혁파로 분류되는 김덕룡(金德龍) 전 원내대표는 박 대표에게 “(원내 협상의 당사자인)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영남권 초선 의원은 22일 “당시 박 대표가 무오류의 착각에 빠져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때부터 박 대표는 개혁소장파와 정치적으로 결별했고, 김기춘(金淇春) 이한구(李漢久) 이방호(李方鎬) 의원 등 영남보수파와 가까워졌다. 유승민(劉承旼) 대표비서실장과 대표 취임 후 한번도 주변을 떠나지 않은 전여옥(田麗玉) 대변인 등 측근 그룹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3기(1월∼현재)▼

박 대표는 지난해 말 덧씌워진 보수 강경 이미지가 자신과 당의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지자 올해 초부터 ‘무정쟁의 해’를 선언하는 등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반대파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채 행정도시법 처리를 강행해 리더십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아직도 박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행정도시법 반대파는 여전히 장외투쟁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박 대표가 정책정당을 만들겠다며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지난해 입당시킨 박세일(朴世逸) 의원이 행정도시법 처리를 놓고 의원직을 던진 것이 그에게 상당 기간 정치적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13일간의 단식 농성을 벌인 전재희(全在姬) 의원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수도권 보수층과 멀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 측과 행정도시법 반대파 간의 갈등 속에서 완충지대로 부상한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와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 임태희(任太熙) 원내수석부대표 등 중도파와의 화학적 결합 여부도 불투명하다.

박 대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등장한 중도파는 “더 이상 지난해와 같은 당 운영은 안 된다”는 내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맹 의장과 임 원내수석부대표는 행정도시법 처리 과정에서 박 대표와 마찰을 빚었다. 당장 4월 임시국회에서 과거사법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당내 갈등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취임 1년 사이에 노선과 주변 인물군이 몇 번씩 바뀔 정도로 아직 ‘박근혜식 정치’가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점이 박 대표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