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탄의 사수’ 3막. 결혼식을 앞둔 신부 아가테(권해선·가운데)가 잇단 불운의 조짐을 두려워하며 친구 엔헨(박지현·왼쪽의 무릎 꿇은 사람)과 신부 들러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사진 제공 국립 오페라단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3막 아가테의 노래에도 나오듯 ‘거룩한 의지(Heiliger Wille)’와 ‘맹목의 우연(Blinder Zufall)’의 대립을 다룬 드라마다. 소재의 근원을 따져보면 이는 전통사회에 유입된 기독교 신앙과 기존 게르만 민속신앙의 대립이기도 하다.
국립오페라단의 ‘마탄의 사수’ 공연이 22일 오후 7시 반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됐다. 출연진으로부터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연출가 볼프람 메링은 이 작품의 대립구도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는 원래 극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신의 대리인 ‘순례자’가 첫 막부터 무대를 내려다보도록 했다. 무대 위의 장치를 이리저리 옮기는 일은 검은 옷을 입은 악마 자미엘의 부하들이 맡도록 했다. ‘우연’이 지상의 자잘한 사건들을 만들어내지만, ‘의지’는 이 모두를 통찰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상징 연출이었다. 그러나 3막을 통틀어 무대 배경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점은 ‘단조롭다’는 불평을 피하기 힘들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인 인물은 남주인공 막스 역의 테너 하석배와 카스파 역의 베이스 함석헌이었다. 큰 볼륨과 윤기 있는 음색으로 뻗어나가는 하석배의 음성은 가슴 후련함을 주었다. 함석헌은 온 몸의 공명을 느끼게 하는 탄탄한 음성과 듣는 이로 하여금 황량한 느낌을 갖게 할 만큼의 인상적 음색 뿐 아니라 악역의 탁월한 연기력도 일품이었다.
아가테 역으로 기대를 모은 권해선은 바그너 ‘방황하는 홀랜드 인’의 젠타 역이 연상되는 강건한 음성으로 분명한 인상을 주었지만, 기도와 상심의 악구(樂句)에서는 좀더 음색을 어둑하게 가져갔어도 좋겠다는 느낌이었다. 2막의 아리아에서는 호흡이 기대만큼 길게 이어지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엔헨 역의 박지현은 무대 초반의 불안을 딛고 3막에서 서늘한 음성의 인상적 노래 결을 선보였다.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의 강건한 음색은 이날 3막 ‘사냥꾼의 합창’에서도 돋보였지만 때로 관현악단의 반주부보다 성급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 오페라에서 반주부의 주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호른의 잦은 실수도 귀에 거슬렸다.
공연은 24, 25일 오후 7시 반, 26일 오후 4시에 계속된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