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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문홍규]“지구 불청객 소행성을 막아라”

입력 | 2005-03-25 18:09:00


이달 초 필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에 참석했다. 이 위원회는 우주에 관한 국제 공동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우주 개발의 법적 문제를 다루는데 현재 67개 회원국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에는 소행성이나 혜성 등 지구접근천체(NEO)가 새 의제로 채택됐다.

이 안건이 국제기구를 통해 실무차원에서 논의된 것은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였다. OECD는 2003년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서 ‘NEO의 위협, 정책 및 대응 방안에 관한 워크숍’을 개최했는데 당시 15개국 대표와 유럽의회, 유엔 등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진행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충돌 위협의 실체를 인정하고는 “각 국은 담당부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정부 권고안을 채택했다. 바로 이 의제가 올해 유엔으로 이관돼 전 세계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회의 결과를 보면 NEO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얘기’라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국이 국가별 면적과 인구 등을 기초로 소행성 충돌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는데 한국은 육상 및 해상 낙하 위협이 OECD 10위권에 드는 ‘위험국’으로 분류됐다. 유엔국제과학이사회는 충돌 직후 나타날 수 있는 도시 파괴, 증권시장 붕괴, 재정 위기 등 경제 효과에 대한 정밀분석을 시도하고 학제 간 공동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예를 들어 유럽과 일본은 올해 12월 잠실야구장 3배 크기의 소행성 궤도 변경을 위한 우주선 기초설계에 들어간다. 프로젝트명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딴 ‘돈키호테’. 또 러시아는 NEO를 대상으로 한 종합 감시·통제·요격체계인 행성방위 시스템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그야말로 각국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총출연하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셈이다.

한국은 독자적인 NEO 프로그램을 소개해 참가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계획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칠레에 무인 관측소를 설치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군의 NEO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는 사각지대를 24시간 감시하는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돌이 장기예보와 예방이 가능한 자연재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도양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쓰나미)의 피해 당사국인 태국과 인도네시아 대표는 “소행성 충돌과 지진해일은 공통점이 많으며 이번 경험으로부터 그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히면서 충돌 대책에 관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충돌 재난의 특징은 ‘극소의 확률’과 ‘극대의 피해’로 요약된다. 충돌 규모에 따라 지진, 해일, 오존층 파괴는 물론 핵겨울과 기후변화가 연쇄 핵반응처럼 일어난다. 만일 전 세계가 과학 기술력을 모은다면 소행성 충돌과 지진해일로 인한 위험은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을 것이 자명하다.

지난주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이 다행히 한국에는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좀 더 신속한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과의 협력이 긴밀하게 이뤄질수록 대처 시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우리는 매년 산하를 할퀴고 간 자연 앞에 무력했으며 매번 수재의연금을 냈고 곧 그 사실을 잊었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것은 위협이 멀리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관측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