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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비]他종교와의 대화

입력 | 2005-03-25 19:28:00


프랑스에서 예수회 신부가 된 나는 1984년 예수회 한국지구에 파견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사찰의 풍경소리와 그윽한 향내에 끌려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불교와 문화를 체험했다. 나는 전생에 스님이 아니었나 생각할 정도였다. 다만 중생 교화를 위해 서양의 가톨릭 집안에 태어나 신부가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 불교에 푹 빠졌다.

처음 방문한 사찰은 송광사였다. 구산 스님 입적 후 얼마 되지 않은 1984년 어느 더운 여름, 불교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던 나는 운 좋게도 구산 스님이 세운 송광사 국제선원에서 수행 중이던 프랑스인 비구니 한 분과 대화할 수 있었다. 당시 그분이 “모든 불자의 최고 소망은 모든 이가 부처가 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말씀은 대승불교의 근본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한번도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충격을 받고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믿었던 종교와 불교의 구원론이 다른 것이 아니었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그리스도님과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모든 이가 믿는 종교에 관계없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는 말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당시는 누구나 계급을 막론하고 출가를 했고, 부처님께서 50년간 전법(傳法·불법을 퍼뜨리고 알림) 활동을 하신 것도 계급이나 신분을 넘어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국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신 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류를 구하려는 것이었다.

‘기도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은 “남을 위하여 기도를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우셨다고 하셨다. 나도 그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위해 더 적극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를 꾸준히 해보니 힘이 절로 솟았다.

현대 사회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내 믿음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믿음의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명원 신부·서강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