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28일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법조계 등 사회 각계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민 여론도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형제 폐지론과 ‘형벌의 본질은 응보’라는 반대론 사이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기복을 보이고 있다.
1995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모래시계’가 종영됐을 때는 사형수인 주인공에 대한 동정여론으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60%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연쇄살인범 유영철 씨의 행각이 밝혀진 이후로는 66% 이상이 사형제 유지에 찬성했다.
▽인간 존엄성 파괴 막아야=사형제 폐지론자들은 “국가 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 정신과 모순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金德珍) 사무국장은 “인간의 생명권 자체가 타인에 의해 함부로 침해될 수 없는 것이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형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도 “법의 잣대로 ‘보호할 가치가 없는 생명’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 등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법관의 오만”이라며 “생명권은 명문규정이 없더라도 헌법정신에 비춰 볼 때 명확하며 국가가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오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柳寅泰) 의원은 올해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증오가 아무리 커도 오판으로 사형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엔 절대 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형제의 범죄 예방적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은 “사형제가 유지돼 왔지만 사형 대상 범죄는 결코 줄지 않았다”며 “사형시키지 말고 수감상태에서 계속 뉘우치도록 하면 그보다 더 큰 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 사무국장은 “김대중(金大中) 정권 이후 실질적으로 사형제가 집행된 사례가 없다”며 “사형제는 범죄 예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해외연구보고도 있고 이제 국민의 요구도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사형제는 필요악=사형제 찬성론자도 사형제의 ‘비인간성’ 및 사법부의 오판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형제가 ‘형벌의 최후 보루’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은 최근 “범죄조직인 ‘지존파’나 ‘막가파’는 물론 테러로 한 번에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를 살려둘 경우 범죄자 한 명의 목숨은 소중하고 피해자 수천 명의 목숨은 그렇지 않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도 이날 “가해자의 고의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 생명에 대한 고려를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범죄수법이 날로 잔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형제도의 범죄 예방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도 많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사형은 가장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이를 통한 일반적 범죄예방 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추정되고 또 그렇게 기대하는 것이 소박한 국민 일반의 법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동국대 김상겸(金相謙·법학) 교수는 “사형제는 개인의 사적(私的) 보복을 막기 위해 국가가 범죄자에게 제도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사형제도로 범죄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