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문제를 맞혀 보시라. “보로딘, 리아도프, 림스키코르사코프, 큐이는 ○○○○○○○○○을 작곡했다.”
음악을 조금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이라고 말할 것이다.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 작품의 이름을 대라’고 고쳐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답은 ‘젓가락 행진곡 변주곡’이다.
‘젓가락 행진곡’은 고금의 음악 작품 중 가장 히트한 곡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빅’에서 톰 행크스가 발로 밟는 장난감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연상하겠지만, 이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젓가락 행진곡’은 피아노 초보자들의 ‘심심풀이용’ 음악으로 애용돼 왔다. 연주하는 데 별다른 기교가 필요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 이 ‘작품’의 기원을 따져보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장 밥티스트 륄리(1632∼1687)를 이 곡의 작곡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륄리는 이 곡과 관계가 없다. 이 곡이 1877년 악보로 나왔을 때 제목은 ‘촙(chop·찍기·젓가락질하기) 왈츠’로, 작곡자는 아서 드 럴(Arthur de Lull)로 표시됐다. 실제 작곡자는 16세의 미국 소녀이자 악보출판사 사장의 동생인 유피미아 앨런이었다. ‘어린 소녀가 악보를 팔겠다고 내놓았어?’라는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 예명을 사용했던 모양이다.
이 쉬운 피아노 연탄(連彈)곡은 살롱문화의 확산에 힘입어 순식간에 구미 각국을 휩쓸었다. 이름도 ‘맨해튼(마천루가 젓가락 같아서?)’ ‘티타티타(두 손가락을 번갈아 누르는 첫 변주의 소리를 모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더니 드디어 ‘커틀릿 폴카(한 손가락씩만 내밀어 치는 모습이 커틀릿 써는 모습을 연상시켜서?)’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가들의 살롱에까지 등장했다. 먼저 보로딘이 이 곡을 변주해 동료 음악가들 앞에서 쳐보였고, 동료들도 심심풀이로 각각 변주를 만들었다. 무소르크스키만이 ‘시시한 짓을 하지 않겠다’며 동참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자는 이제 이 러시아의 대가들이 소녀 작곡가에게 바친 오마주(예찬)의 실체를 귀로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인터넷 음반점 ‘CD Now’(www.cdnow.com)에 들어가 ‘classical music’ 항목에서 ‘All Russian’이라는 음반을 찾아보시길. 컴퓨터에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가 설치돼 있으면 각 변주의 ‘맛보기’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젓가락으로 ‘돈가스’(커틀릿)를 집으며 들으면 금상첨화 아닐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