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은 당혹스럽다. 다 큰 처녀총각 셋이 홀딱 벗고 함께 욕조에 들어가 목욕과 수다를 즐기고, ‘내 앞에서 섹스하라’고 천연덕스럽게 벌칙을 내리니 말이다. ‘성기 100% 노출’로 더 유명해진 이 영화 속 행위들은 청춘의 유희인지, 혁명에 대한 열정인지, 아니면 미친 것들의 미친 짓거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다. 미국 유학생 매튜가 프랑스인 테오와 이사벨 남매의 집에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에로 영화’가 아니란 사실.》
# 난잡한 행위의 실체
남매가 매튜를 동참시켜 벌이는 각종 행위들을 ‘변태적’이라고 단정하긴 이르다. 이들의 행동은 단 하나의 기준 아래 일렬로 서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장을 멈춘 애들 같아”란 매튜의 말마따나, 이들의 행위는 사춘기 아이로 돌아가 본능에 충실해서 벌이는 놀이 혹은 욕망(판타지)이다. 감독 스스로가 어릴 적 욕망했던(혹은 저질러버린) 행동들을 털어놓는 ‘고백의 목록’인 것.
습관처럼 벌거벗은 채 함께 자는 남매(사진 ○1)는 ‘아라비안나이트’에도 빈번히 나오는 인류의 ‘감춰진 꿈’을 옮겨 놓은 것이다. 바로 오누이간의 근친상간(남매는 실제론 성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이들 남매가 함께 자는 것은 두 사람이 ‘완벽한 하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누이가 쌍둥이인 것도 ‘나와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나의 분신’이 있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희망에 다름 아니다. 남매가 스스럼없이 벗고 노는 건 어린시절 ‘의사놀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세면대에 오줌을 누는 매튜(사진 ○2) △침대에 각종 천을 씌워 동굴처럼 만들고 그 속에서 나체로 자는 남매와 매튜(사진 ○3) △면도기로 음모 밀기 △눈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도록 하는 벌칙 등은 어려서 꿈꿨거나 한번쯤 저질러본 ‘금지된 장난’의 목록이다.
“부모를 법정에 세워야 해” 하는 테오의 주장 역시 설교만 하는 부모에게 벌을 주고 싶은 아이들의 검은 욕망의 발현. 또 부모가 두둑한 돈을 남긴 채 여행을 떠나 집을 남매에게 비워준다는 설정도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나쁜 짓을 저질러 보고 싶은’ 사춘기 때의 판타지다. 비너스 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이사벨(사진 ○4)의 치마 속에 얼굴을 집어넣는 매튜의 모습은 소년이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비너스 상과의 섹스’를 실행에 옮기는 행위. 세상에 못할 짓이 없을 것처럼 대담무쌍하게 행동하던 이사벨이 매튜와 섹스하기 전까진 처녀였다는 ‘황당한’ 설정도 ‘막 놀지만 알고 보면 처녀’를 꿈꾸는 청년들의 판타지를 포개놓은 것이다.
# 감독이 한국에 살았다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순식간에 ‘공범’이 된다. “영화를 찍는 건 부모님의 침실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 들여다보면 죄책감이 들지만, 안 들여다 볼 수 없거든?” 하는 남매의 말마따나, 관객은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남매의 행각에 죄책감이 들면서도 안 들여다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베르톨루치 감독이 한국에 살았더라면, 자신의 못다 한 욕망을 고백하는 이런 문제작을 만들어냈을까? 아닐 것이다. 홀딱 벗은 채 휴지를 온몸에 칭칭 감고 ‘미라 놀이’를 일삼는 어른들을 룸살롱에서 목격했다면, 베르톨루치는 이 작품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여기는 더 이상 욕구불만의 땅이 아니라 어른들의 모든 꿈이 실현되는 디즈니랜드’라고 감탄하면서. 한국 남자 모두가 훌륭한 ‘몽상가들’이라고 감탄하면서.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