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어느 날,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일본 사이타마(埼玉) 현 시키(志木) 시의 호소다(細田)고교를 찾았다. 교사(校舍) 안으로 들어서자 액자 속의 교훈이 눈에 들어왔다. 한글이다. ‘사랑과 봉사’라고 쓰여 있다. 교장실로 안내됐다. 한국 장구, 한국 탈, 한국 도자기, 한국 병풍…. 방안 구석구석에서 한국 냄새가 풍겼다. 교장선생님은 장구를 가리키며 “100번째 한국 방문을 축하한다며 한국 여행사에서 준 선물”이라고 소개했다.
▷호소다 사나에(細田早苗·83) 교장. 사립인 이 학교의 오너 교장이다. 자상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고집이 하나 있다.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반드시 한국으로 보낸다는 것. 아직 일본인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1970년대 초, 눈총을 받아 가며 한국을 여행해 보고 결심했다. “이웃나라를 모르고 세계를 얘기할 수는 없다.” 1978년부터 학생들을 한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1998년부터는 여행 코스에 강원 정선군을 넣었다. 정선아리랑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호소다 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는 아리랑이고, 아리랑 중에 역사가 가장 긴 게 정선아리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99년 명예정선군민이 됐다. 2002년 한국 방문의 해에는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독도와 교과서 갈등으로 한일 교류 행사가 무더기로 취소되고 있다. 호소다 고교생들은 어땠을까. 이번에도 정선에 왔다. 올해 수학여행단 267명 중 1진 62명이 3월 28일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고, 정선고교 학생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2진은 18일, 3진은 25일 한국에 온다. 호소다 교장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정선아리랑연구소에 편지를 보냈다. “올해도 그쪽으로 수학여행단을 보내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최근의 한일관계를 걱정해서다. 내년이면 한국을 찾은 호소다고교 학생이 1만 명을 넘어선다. 호소다 교장 같은 이가 얼마나 더 있으면 한일 간의 냉전이 풀릴까.
심규선 논설위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