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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임규진]황창규와 강철규

입력 | 2005-03-31 19:12:00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에게 “미국 하버드대에서 ‘용사마’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면서요”라고 물어봤다. 한 달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주최한 그의 특강에 1000여 명의 엘리트가 몰려들었다는 보도를 떠올린 것이다. 황 사장은 “현장의 열기는 보도 이상이었다”고 자랑 같지 않게 덤덤히 답했다.

황 사장 특강에 참석한 학생 수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회장 특강의 700명 기록을 일거에 300명이나 깬 것이었다. 하버드대생들은 황 사장에게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한국에서는 ‘정경 유착과 불투명 경영’ 혐의를 받고 반(反)기업 정서의 표적이 되는 재벌기업 경영자한테서 말이다.

학생들은 물었다. “첨단 기술을 즉시 응용해서 소비자 편익을 높인 첨단 제품을 양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과연 지금의 성공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황 사장은 대답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개발(R&D) 투자와 오너의 25년에 걸친 흔들림 없는 투자 의지가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낳았다. 미래에도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갈 것이다.”

황 사장이 하버드대에서 기립박수까지 받은 지 3주 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서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장 상황이 투명해질 때까지 공정위의 현재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

국책 연구기관과 정부 내 다른 경제 부처들조차 공정위는 경쟁정책만 담당해야지, 지배구조 같은 기업정책을 다 틀어쥐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기업 규제에 집착하는 듯한 강 위원장을 보면서 이렇게 묻고 싶다. “공정위원장으로 재직한 만 2년 동안 강 위원장께서 경제 살리기에 기여한 업적을 대충이라도 돈으로 계산해 낼 수 있습니까?”

현대 정부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재산권의 확립과 공공재의 공급이다. 재산권 확립은 계약의 이행을 보장하고, 소유권의 배타성을 보호하는 일이 핵심이다. 정부가 공급해야 할 공공재로는 국방, 치안, 사회간접자본, 경제개발 조직, 환경 규제 등이 있다.

개발독재 정권은 소액주주, 납세자, 노동자의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지만 ‘경제개발 계획 및 조직’이라는 공공재 공급에는 효율이 높았다. 2류 정부는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개발독재 성장 모델을 배우려는 나라가 많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재산권 불안을 호소하는 대주주와 부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돈의 국외 탈출 러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현 정부는 공적연금제도와 공교육 정상화, 산업통상정책의 선진화 등 공공서비스의 효율적 공급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니 요즘 한국 정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나라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에도 없다.

황 사장은 하버드대 특강의 소회를 잠깐 소개했다. “40쪽짜리 삼성 보고서를 읽고 온 대학원생들은 단지 1시간 강의를 듣고도 우리의 미래 전략을 꿰뚫어보더군요. 놀라웠습니다. 이 학생들이 결국 경쟁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긴장되더군요.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더 뛸 수밖에 없습니다.”

강 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더 뛸까.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