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 김수영 7단이 췌장암 말기로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지난달 21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열린 LG배 세계기왕전 예선전에 출전해 대국을 펼쳤다. 사진 제공 월간바둑
“죽는 날까지 바둑 대회에 출전할 생각입니다.”
구수한 입담의 TV 바둑해설자로 인기를 모았던 프로기사 김수영(金秀英·61) 7단이 말기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다. 그는 지난달 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암 말기 판정을 받았으며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다.
암으로 몸무게가 25kg이나 빠졌다. 풍채 좋은 호남형의 얼굴이 홀쭉하게 변했고 우렁차던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았다. 그는 췌장암 특유의 심한 통증 때문에 눕지도 못해 앉아서 밤을 지새우고 조금만 비위가 상해도 토하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진통제와 진토제를 먹는데 약이 독해서 정신이 깜빡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처음엔 절망했죠. 그런데 제 스승인 조남철(82) 9단께서 제가 병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최근 사모님을 통해 ‘내가 죽거든 모든 일을 김수영과 상의해 처리하라’는 말씀을 전해 왔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사부일체(師父一體)인데 제가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질러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는 현 상태에서 유일한 치료법인 항암제를 쓰라는 병원의 권유도 뿌리쳤다.
“암세포를 죽이려고 독한 약을 쓰면 저도 오래 견디지 못해요. 무리하게 상대 대마를 잡으려 하면 자기 말이 다치는 바둑의 이치와 같죠. 좋든 싫든 제 몸에 생겼으니 같이 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해야 제 마음도 편하고…. 그 친구도 미안하면 사라지겠죠.”
그는 지난달 21일 아픈 몸을 이끌고 LG배 세계기왕전 예선 1차전에 참가해 유해원 8단과 대국을 펼쳤다. 20집 이상 우세한 형세를 만들었지만 중반 이후 자멸하며 아쉽게 패했다.
그는 1일 왕위전 예선, 7일 한국바둑리그 예선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김 7단은 9일 프로골퍼인 큰아들(35)을 장가보낸다. 그는 “아비가 아프니까 그 녀석이 서둘러 날짜를 잡았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