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갔다가 백제역사 강연회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백제 전공학자를 초청해 최신 연구 성과를 듣는 자리였다. 대학이 주최하는 행사여서 청중은 젊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겠거니 짐작했다. 막상 강의실에 가보니 100명이 넘는 청중 수도 의외로 많았을 뿐 아니라 계층이 남녀노소로 다양했다. 강연 마지막에 연사에게 질문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직업이 자영업자 가정주부 회사원 등으로 다채로웠다. 남의 나라 역사에 대한 높은 호기심이 무엇보다 신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우리가 놓인 상황이 100년 전과 비슷하다”며 역사 공부를 주문했다고 한다. 역사왜곡의 파문 속에서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역사’라는 단어는 앞으로 과거사 청산과 보수 진보의 대립 등 각종 현안에 단골처럼 등장할 터이다.
▼국사시간 늘린다고 해결될까▼
우리는 역사에 무관심한 편이다. 고교생 대학생 일반인으로 올라갈수록 역사를 잘 알아야 정상이지만 위로 갈수록 역사지식이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역사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도 국민 다수가 역사를 모르면 역사에서 바른 해답을 얻지 못한다. 역사가 자칫 사회를 분열시키고 남을 해치는 흉기로 변모할 수 있다.
문제는 역사를 모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학생들이 역사를 더 공부하게 만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국사교육이 강화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주로 학습부담이 늘어나게 될 청소년층의 반응이다.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보아야 어차피 암기교육으로 끝날 텐데 지금보다 뭐가 나아진다는 말인가’ ‘지금 있는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도 적은 게 아니다. 수업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즉흥적인 의견 같아도 이 안에 정답이 들어 있다.
국사는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암기과목이다. 잡다하게 외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험을 치르고 돌아서면 그걸로 끝이다. 이런 수업을 확대해 봤자 거부감을 키울 뿐이다. 걱정스러운 점도 많다.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左)편향적 기술이 심각하다. ‘국사교육 강화’가 ‘이념교육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교사들이 자신의 역사관을 부르짖는 자리가 되어도 안 될 것이다.
국사와 함께 세계사도 알아야 배타적인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역사왜곡에 논리로 맞서려면 중국사와 일본사를 알아야 한다. 가장 긴요한 것은 역사를 판단하는 사고능력의 배양이다.
원래 역사만큼 흥미진진한 분야도 없다. 모든 이야기가 역사를 소재로 하지 않는 게 없고 TV의 역사프로그램은 어느 나라에서나 인기다. 어쩌다 역사의 무관심이 확대되고 우리 역사를 남이 빼앗아 가는 줄도 모르게 되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역사 교사들의 잘못만이라고 할 수 없다. 점수를 위한 입시교육이 역사에 대한 흥미를 차단했다. 인문학을 경시하는 풍토처럼 사회 전체가 역사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이를테면 공영방송의 역할 중 하나가 알기 쉽고 재미있는 역사프로그램을 제작해 역사에 대중의 관심을 북돋는 일이다. 꽤 인기를 모았던 KBS의 ‘역사스페셜’은 슬그머니 ‘코드’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공영방송이 하는 일이 늘 이런 식이다.
▼역사에 빠져 보려면▼
역사왜곡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 그마나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우리도 역사 강좌에 청중이 몰리는 역사의 ‘호기심 천국’이 되는 날이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