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뿐 아니라 한국 정치권도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민 동원의 정치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반성’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울대 강명구(언론정보학) 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서울대에서 열린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49) 도쿄대 교수의 ‘정신의 자유와 일본의 민주주의-한일 지식인과 시민의 대화’ 강연 후 토론자로 나와 일본 정치권이 우경화와 민족주의로 헌법을 경시하는 것 못지않게 한국 정치권도 극단적 민족주의를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한일 양국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보편의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며 “일본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합리적 대화와 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용욱(국사학) 교수도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 확산은 서로 연결돼 있는 것”이라며 “한미일의 민족주의는 갈등관계처럼 보이지만 행동양식이 비슷하고 서로 연동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날 강연회는 다카하시 교수가 일본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는 “오늘날 일본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자유 평화 등 일본 헌법에 명기된 민주적 가치들은 국가주의 정치권력의 공격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이고, 중립적인 대중도 민족주의란 이름 아래 우익에 포섭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일본 우익세력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을 이용해 ‘일본은 피해자’란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이는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전했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이 서로에 대한 질책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다짐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특히 한일 양국의 정치권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공멸을 초래할지도 모르며 공존을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국민감정이 들끓고 있는 요즘, 양국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한층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