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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미스터리

입력 | 2005-04-02 04:21:00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사업 투자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회사 하이앤드그룹의 전대월(全大月) 전 대표가 출국금지되는 등 사정당국의 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앞으로 전 씨가 철도청을 어떻게 사업에 끌어들였는지가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기사건’이었는지, 아니면 정관계 인사가 연루된 ‘게이트’로 비화될 것인지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의문투성이인 전 씨 행적=전 씨가 시베리아 유전사업에 처음 뛰어든 것은 지난해 6월경 러시아 유전업계 사정에 비교적 밝은 에너지거래회사 쿡에너지 권광진 대표에게서 사업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권 대표는 당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전 씨 회사에서 사업설명회까지 열었으나 전 씨는 처음에는 사업 제의를 거절했다.

권 대표는 “전 씨가 한 달쯤 뒤에 찾아와 ‘철도청이 인도네시아 철광석 사업에 투자하려고 하는데 시베리아 유전사업으로 끌어들이겠다. 그 대신 지분의 80%를 달라’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씨가 당시 ‘정치권 실세인 A 씨를 잘 아는데 A 씨에게 부탁해 철도청이 참여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A 씨와 평소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허문석(㈜코리아크루드오일 대표) 박사가 시베리아 유전사업이 사업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철도청이 사업에 뛰어드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권 대표의 주장이다.

어쨌든 이때부터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 씨와 권 대표 등은 8월 17일 철도청 산하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과 함께 ㈜코리아크루드오일(KCO)을 설립했다. 또 8월 초부터 10월 중순까지 현지답사와 계약 체결 등을 위해 러시아를 5차례나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전 씨는 부도 직전이었을 뿐 아니라 해외 상습도박 혐의로 법원에서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전 씨는 8월 28일 부산지법에서 필리핀에서 도박을 한 혐의로 벌금 3억 원을 선고받았으며, 이틀 뒤인 30일에는 하이앤드사가 부도가 났다.

전 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벌금도 내야 되고, 회사 사정도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철도청이 6200만 달러 상당의 대형사업을 추진하면서 투자 파트너의 재정 상태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제3자는 없나=전 씨는 13대 국회 때 모 의원의 비서관을 지내다 1993년부터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동향인 정치권 A 씨와 “친분이 있다”고 과시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강원 출신의 국회의원 환영회 행사를 자신이 비용을 써가며 성대하게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권 대표는 “전 씨가 A 씨와 친하다고만 했지 다른 사람 앞에서 통화를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 씨가 A 씨의 이름을 팔며 투자자들을 유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모 은행이 사업성이 불투명한 유전사업에 투자하는 KCO 측에 담보 없이 620만 달러(약 62억 원)을 대출해준 과정도 외부 인사의 개입 의혹이 이는 대목.

이 은행 관계자는 1일 “당시 대출 결정은 본점에서 이뤄졌으며 무담보 대출을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철도청장 명의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모든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간접지급보증서(확약서)를 받았다”며 “9월 15일 대출 승인이 이뤄졌을 때는 KCO의 지분 변동에 따라 대주주가 철도재단(95%)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계에서 간접지급보증서라는 형식을 통해 대출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