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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기현]교황과 러시아

입력 | 2005-04-04 18:41:00


“바티칸 교황청과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집요한 공작으로 우리 조국과 동맹국들이 무너졌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하고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던 시절, 러시아 보수파 세력의 집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던 말이다. 이들의 ‘음모론’에 따르면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고용 간첩’쯤 됐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소련은 물론 사회주의권 전체의 붕괴를 가져온 ‘원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지원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태도 역시 고울 리가 없었다.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소련 체제와 공산주의에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소련의 위성국이던 폴란드 출신이었다. 폴란드는 같은 슬라브계지만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컸다.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린 과거사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제가 된 뒤 조국이 공산화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공산정권은 국민 다수가 독실한 신자여서 교회를 노골적으로 탄압하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간섭하고 압력을 가했다. 조국을 공산체제에서 ‘해방’시켜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교황이 된 뒤에는 폴란드 자유노조 등 민주화운동 세력을 적극 지원했다. 당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안보보좌관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련 체제에는 수백 개 사단 이상의 위협적인 존재”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1981년 일어난 요한 바오로 2세 저격 사건의 배후가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라는 의혹이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1987년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 이후 대규모 반체제 시위가 일어났고 그로부터 얼마 안 돼 동유럽의 공산정권과 베를린 장벽이 차례로 무너졌다. 이렇게 보면 “교황 때문에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졌다”는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지금은 전 세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높을 정도로 그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과거 그의 반(反)소련적인 태도도 냉전 종식을 위한 노력으로 인정받아 오히려 칭송받고 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두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고 그를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하지만 그의 모스크바 방문은 끝내 무산됐다. 그도 역사적인 러시아 방문을 원했지만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의 오랜 갈등이 걸림돌이었다. 교리 해석 차이와 옛 소련 지역의 관할권을 놓고 대립했던 양측은 아직도 완전한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념 대결을 극복한 요한 바오로 2세였지만 러시아 정교회와의 갈등만은 어찌할 수 없었던 듯하다.

차기 교황은 그가 못다 이룬 러시아 정교회와의 화해와 모스크바 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에 성공한다면 종교적 의미만큼이나 정치적 의미도 클 것이다. 아직도 내심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와 서구가 상호 윈윈의 동서 화합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기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