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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홍윤숙]세계 희망의 한 끈이 끊어지던 날

입력 | 2005-04-04 18:47:00


예감하고는 있었다. 최근 들어 더욱 잦아진 병환, 성 베드로 광장에 나타나 말씀도 못하시고 성호를 그어 축성만 해 주시던 모습, 그날도 밤 11시 마지막 뉴스로 교황의 임종이 임박한 상황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예감 탓일까.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라디오를 켰다. TV는 아직 시간이 멀어 틀 생각도 안 했다. 라디오에선 정규방송이 무슨 음악인가를 틀어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캄캄한 창밖을 지켜보며 오늘 안에 기필코 무슨 소식이 있을 거라는 예감으로 가슴이 섬뜩했다.

순간 라디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튀어올랐다. “뉴스 특보입니다. 방금 교황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과 가슴이 무너지고 심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함께 왔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무의식 중에 예수 고상 앞에 촛불을 켜고 눈을 감았다. 성호를 긋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랑의 전도사 바오로 2세▼

“그분이 가셨습니다. 당신이 보내신 이 시대 큰 목자 요한 바오로 2세가 마침내 그 소명 다 마치고 당신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노고 치하하시고 두 팔 벌려 안아 주소서.”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크라쿠프 교구 바도비체에서 태어나 58세에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그의 사제생활은 헌신적이었다. 천상적 온유함과 따뜻함에 정의로움과 자애로움까지 더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26년간 교황직에 재임하는 동안 그는 역대 교황과 달리 세계를 누비면서 평화와 화해, 민주화와 사랑의 전도사로 행동한 교황이었다. 갈라진 종교의 화해와 화목을 위해 반목하는 아픈 형제들의 나라에 평화와 사랑을 전달하며, 교회가 저지른 수세기간의 잘못을 처음으로 사죄하고 아우슈비츠를 찾아가 그 영혼을 위로하며 조국 폴란드의 민주화에 결정적 힘을 주기도 했다.

그중에도 그의 한국사랑은 극진했다. 한국의 역사가 조국 폴란드와 비슷한 점에서 교황은 각별한 정을 한국에 지녔다.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 기념식에 손수 참석해 보석처럼 빛나는 선물을 했다. 바로 순교자 103위를 성인품에 올려 그 시성식을 한국 현지에서 성대하게 거행했으니 이로써 200년간 눈감지 못한 수많은 순교 성인들의 영혼을 위로해주셨다.

그뿐 아니라 1987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이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 몸소 두 번씩 내한해 치러주시니 그분의 한국에 대한 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들 한국가톨릭문인회에서는 200주년을 기념해 시 소설 수필집 등 3권을 엮어 교황에게 기념으로 헌정하는 기쁨을 가졌었다.

필자는 당시 가톨릭문인회의 대표간사로 있었던 관계로 직접 여의도광장 그 높은 단상에 올라가 교황성하를 지척에서 뵈옵는 영광을 누렸으니 내 생에 잊지 못할 일이 되었다. 지척에서 뵌 그분의 모습은 바로 인자하고 자애로운 우리들의 아버지였다. 몇 번씩 저격을 받아 수술까지 한 몸으로 범인을 찾아가 따뜻이 용서하고 그의 사면을 간청했던 일도 잊을 수 없다.

▼극진했던 한국사랑▼

마더 테레사였던가.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물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물으면 역시 죽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남에게 줄 때 남은 것을 주지 말라, 상처를 받을 때까지 주라고 했다. 예수는 바로 남은 것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째로 십자가에 매달아 준 존재다. 그렇게 죽은 존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남은 것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죽기까지 내어준 분이다. 바로 그렇게 죽은 분이다.

홍윤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