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만나는 계기는 다양하다.
우연하게 눈에 띄었는데 알지 못할 힘에 끌리기도 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다 만나기도 한다. 글자로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만화로도 만나고 영화로도 만나며, 요즈음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도 만난다.
고전과 독자의 관계도 일방통행만은 아니다. 첨단의 멀티미디어 환경과 초국적 자본주의 체계는 고전을 더 이상 ‘순수의 영역’에 가둬두지 않는다. 읽고 마음에 담고 실천하는 방식에서, 인터넷 게시판 소설이나 온라인 게임에서와 같이 읽고 다시 쓰고 변형하는 방식으로 고전이 소비된다. 고전이 안 읽힌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전의 두루누리(유비쿼터스·어디서나 존재함)화가 진척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고전과 만나는 계기와 방식이 다변화된 시대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전을 대할 것을 주장하는 일은 고전을 죽이는 행위와 진배없게 된다. 실제로 많은 고전이 그렇게 죽어갔다.
고전의 장점은 그 자체에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를 내장하고 있음에 있지 않다. 고전은 ‘카오스’일 따름이다. 모든 가능성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로 담겨 있다. 독자는 저마다의 관심사와 필요를 갖고 고전에 들어가, 각자의 필요대로 답을 얻고 길을 찾는다.
고전이 안겨주는 삶과 사회,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통찰과 해석은 이렇듯 고전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고전은 일종의 미디어(매체)다. 혼자 있어도 빛을 발하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의 만남 속에서 그 가치가 확인되고 그 쓸모가 확산되는 존재이다.
루쉰(魯迅·1881∼1936)은 이런 면에서 꼭 짚고 넘어갈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중국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던 그는 중국에서뿐 아니라 중국 바깥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 중국작가이다. 이는 그의 소설이 지닌 미디어로서의 뛰어난 성능 때문이었다.
실제로 중국인은 그를 통해 자신의 전통과 근대를 성찰했고, 일본인은 그를 통해 자신의 근대와 근대 너머를 사유했다.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갖고 들어와 그의 소설에 비추어보고 뭔가 답을 얻어갔다. ‘지금-여기’의 고민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 루쉰의 소설은 그래서 고전이 될 수 있었다.
‘루쉰소설전집’에는 그가 평생 출간한 3권의 소설집이 모두 담겨 있다.
첫 번째 소설집은 ‘함성((눌,열)喊)’이다. 여기에는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광인일기’와 중국인의 본성을 날카롭게 해부한 ‘아Q정전’ 등 15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두 번째 소설집은 ‘방황’으로 여기에는 ‘축복’ 등 11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세 번째 소설집은 ‘고사신편’이다. ‘옛 이야기를 다시 쓴다’는 제목의 이 소설집은 일반 민중에게도 친숙한 신화나 전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 일색이다. 이 방식은 루쉰이 ‘고대와 현대에서 제재를 취하여 그들을 함께 얘기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듯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고전은 늘 새롭게 쓰이고 만들어진다. 그건 콘크리트가 아니라 찰흙이다. 따라서 빚는 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빚어진다. 찰흙으로 작품을 빚어내는 마음. 고전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교수 중어중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