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식목일이었다. 강원 양양군과 고성군 등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귀중한 산림을 태우고 주민들의 가옥을 삼켰다. 심지어 전통 사찰인 강원 양양 낙산사의 건물들과 문화재까지 태워 버리는 참사로 이어졌다.
▽양양 산불=양양군 강현면 화일리 인근 야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발생한 시간은 4일 오후 11시 50분경.
한 주민이 속초소방서 상황실에 “산불이 났다”고 급박하게 신고했다. 산림청과 군경 헬기 18대와 군인, 공무원, 주민 등 6000여 명이 즉각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초속 10m 이상의 강풍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속초소방서와 양양군은 우선 주민 대피에 들어갔다. 산불 발생 1시간 뒤인 5일 0시 55분경 강현면 일대 주민 300여 명은 인근 마을회관으로 급히 대피했다.
불길이 잡히지 않자 곧이어 관동대 양양캠퍼스 기숙사 학생 700여 명도 양양읍의 한 예식장으로 긴급 대피시켰다.
주민 최달영(42·농업·양양읍 기정리) 씨는 “오전 5시 반경 불길이 갑자기 옮겨 붙기 시작하더니 불과 30분 만에 마을의 가옥 5채가 순식간에 불에 타 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불은 5일 오전 한때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으나 오후 들어 갑자기 동해안으로 번지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낙산해수욕장 소나무숲으로 불길이 번지자 인근 콘도미니엄 투숙객을 포함해 관광객 1500여 명은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뿌연 연기를 뚫고 급히 대피해야 했다.
이로 인해 오후 4시경 양양군 전역에 재난경보가 내려졌고 검은 연기를 동반한 강한 불길로 동해안가 국도 7호선이 한때 통제되기도 했다.
5일 밤까지 잔불이 여전히 꺼지지 않고 강풍을 타고 오락가락해 산림 당국은 긴장의 밤을 보내야 했다.
▽고성 비무장지대 산불=지난달 29일 오전 8시 20분경 동부전선 통일전망대 서북쪽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4일 오전 9시 15분경 비무장지대 고황봉에서 재발한 뒤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 산불로 20ha의 산림 피해가 발생했다.
불은 5일 오후 10시 현재 고성군 최북단 마을인 현내면 명파리 북쪽 3∼4km까지 내려왔으나 일단 소강 국면. 고성군은 주민대피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산림청과 군 헬기 7대, 진화장비 10대와 군경과 소방공무원, 주민 등 1000여 명이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였으나 심한 강풍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고성 산불지역은 일반주민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어서 군 장병과 헬기에 의한 제한적 진화 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더욱 힘든 상황이다.
양양=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