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말아 올린 채 해조류처럼 기어 다니는 문어. 사진 제공 사이언스
자연계에는 기상천외한 위장을 하는 생물이 많다. 해조류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문어에서 순진한 물고기처럼 모습을 바꾸는 포식 물고기까지. 또 ‘맛없는’ 동료를 닮도록 진화한 나비도 있다.
○변신의 귀재 문어
우연히 호주 해안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해조류 덩어리를 만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 해조류로 위장한 문어일지도 모른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통합생물학과 크리스틴 허퍼드 연구팀은 지난달 25일자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며 해조류처럼 움직이는 호주 문어(Octopus aculeatus)의 특이한 행태를 보고했다.
연구팀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 호두 크기의 이 문어는 6개의 다리를 머리 위로 말아 올린 채 나머지 두 다리로는 밑바닥을 걸으며 이동한다. 물론 전체적인 모습은 해조류 덩어리처럼 보인다.
문어는 사실 변신의 귀재다. 대부분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몸의 모양, 또는 피부의 무늬나 색깔을 바꾸는 위장을 하며 돌, 해조류, 산호 사이에 숨는다. “호주 문어처럼 움직이며 해조류처럼 위장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2001년 영국 런던의 왕립학회보에 실린 인도네시아 문어의 위장에 대한 연구결과는 더 놀랍다. 검은 줄무늬를 가진 이 문어는 맹독성 물고기(lionfish)가 가시를 펼친 모습을 흉내 내거나 독이 있는 혀가자미처럼 바다 밑바닥에 납작 엎드리기도 한다. 또 자리돔에게 물어뜯길 때는 얼른 6개의 다리를 구멍에 숨기고 두 다리를 내뻗어 자리돔의 천적인 바다 독사로 위장한다.
○순진한 척하는 포악한 물고기
주변에 등푸른청소놀래기가 있을때는 등푸른청소놀래기처럼 위장했다가(위) 없을때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포식 물고기. 사진 제공 네이처
먹이를 잡기 위해 그때그때 다른 색깔로 변신하는 포악한 물고기도 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생물학부 이사벨 코테 연구팀은 인도네시아 산호초에 사는 포식 물고기(Plagiotremus rhinorhynchos)를 관찰한 결과를 1월 20일자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물고기는 등푸른청소놀래기가 주변에 있으면 검은 바탕에 푸른 줄무늬의 형태로 위장한다. 등푸른청소놀래기는 큰 물고기에 붙어 있는 기생충을 잡아주는 청소부 물고기다. 포식 물고기는 등푸른청소놀래기처럼 변장해 있다가 다른 물고기를 커다란 송곳니로 찢어 먹어버린다.
반면 주변에 등푸른청소놀래기가 없으면 이 물고기는 평상시 모습을 유지한다. 이때는 물고기 떼에 숨어 지내다가 지나가는 물고기를 공격하는 전략을 쓴다.
○‘난 맛이 없는 나비예요’
맛없는 황제나비(왼쪽)를 모방한다고 추정됐던 작은 나비. 사진 제공 네이처
나비 중에는 애벌레 상태에서 맛없는 식물을 먹어 성충이 돼도 그 화학물질을 몸에 지님으로써 포식자인 새의 공격을 피하는 종류가 있다. 이런 나비를 한번이라도 먹은 새는 그 지독한 맛 때문에 다시는 건드리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런 맛없는 나비의 색깔이나 무늬를 닮아가도록 변신하는 나비도 있다.
1990년대 말 미국 플로리다대 마크 살바토 박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호랑나비(Papilio dardanus) 암컷은 맛없는 여러 나비를 닮도록 진화해 왔다. 변신의 형태는 무려 30가지가 넘는다. 이 호랑나비는 ‘나도 맛이 없다’는 걸 거짓으로 경고하는 셈이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