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7일 오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석유개발 사업 관련자들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녹취록을 언론에 배포했다. 이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장과 국회 본회의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진은 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 잠시 모습을 나타낸 이 의원의 모습. 김동주 기자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투자 의혹과 관련해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이 7일 주요 관련자들과의 통화내용 녹취록을 공개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녹취 요지=녹취록은 이 의원 비서관이 지난달 말 허문석(許文錫) 한국크루드오일(KCO) 대표, 전대월(全大月) 하이앤드 사장, 신광순(申光淳)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과 통화한 내용. 그러나 녹취록에 나타난 각 관계자의 주장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허 씨는 “이 의원 소개로 전 씨를 만났고, 이어 전 씨를 철도청 왕영용(王煐龍) 사업개발본부장에게 소개해 줬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전 씨와 왕 본부장이 소개자인 자신은 제쳐놓은 채 서로 ‘형님, 동생’하며 사업을 주도했다는 것. 허 씨 본인은 사업진행 과정은 물론 계약이 파기된 경위도 몰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 씨는 “어느 날 갑자기 허 씨가 왕 씨를 소개해 줘 사업을 하게 됐다. 사실 철도청이 (이번 사업에) 들어온 게 의아했다”고 말했다. 허 씨의 ‘중개’가 사업추진의 결정적 동인이었다는 취지로, ‘단순소개만 했을 뿐 이후 상황은 모른다’는 허 씨의 주장과 차이가 있다. 전 씨는 또 “러시아에서 계약을 하고 와 보니 내 회사가 부도가 났고 (우리은행이 신용 불량을 이유로) KCO의 모든 권한을 철도재단에 100% 줘야만 돈을 주겠다고 해서 주식을 120억 원에 넘기고 나는 빠졌다”고 밝혔다는 것.
한편 신 사장은 “상황이 너무 생소하고,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주관 본부장이 열성적으로 얘기하니 ‘한번 해보자’고 해서 계약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입장=이 의원은 “나를 사칭하거나 이익추구 때문에 사업을 추진하고, 추진과정에서 이권이 충돌돼 네 탓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전 씨의 동업자였던 쿡에너지 권광진(權光鎭) 사장이 신 사장과 허 씨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내 “주식 120억 원에 대한 인도 대가로 36억 원을 내놓으라. 그렇지 않으면 언론에 발표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실제로 관계자들 간에 알력이 적지 않았다는 것.
이 의원은 전 씨가 찾아와 투자자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허 씨의 연락처를 알려준 게 전부라고 했다. 허 씨가 전 씨를 만나본 뒤 자신에게 “전대월을 잘 아느냐”고 물어 왔고, 자신은 “잘 아는 사이가 아니다. 알아서 판단하라. 결국 비즈니스적인 판단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것.
▽풀리지 않는 의혹=이 의원이 녹취록 전문이 아닌 요약본만 공개해 의구심을 낳고 있다.
철도청이 유전개발 사업에 뛰어든 경위도 여전히 의문이다. 왕 본부장이 ‘열의’를 보여 ‘한번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는 신 사장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외압 논란이 이는 대목이다.
왕 본부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지난해 10월 허 씨와 함께 이 의원을 찾아가 석유기금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자금 지원 요청을 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난해 11월 초순경 신 사장이 찾아와 유전사업 얘기를 해 철도청이 관계돼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밝히는 등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