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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두발 자율화 논란

입력 | 2005-04-08 16:36:00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데 머리에 ‘고속도로’가 웬 말인가.

지금 인터넷에는 ‘중고등학생들의 두발 단속이 타당한가’라는 해묵은 주제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불붙었다.

“머리카락이 길면 공부를 안 한다는 생각이 말이 되는가”라며 반발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교권 수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필요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이 문제가 누리꾼(네티즌)들에게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지난 7일 부산진구의 모 고등학교의 '무리한 생활지도'가 한 지역신문에 보도되면서 8일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가 주요기사로 다뤘기때문.

보도에 따르면 부산의 Y 고교는 7일 오후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은 뒤 머리가 단정하지 않다며 학생 100여명의 머리를 2~3군데 강제로 깎았다.

또 일부 학생들의 바지통이 헐렁하다는 이유로 바지 밑 부분 20㎝가량을 찢기도 했다.

학교 측은 “앞머리와 뒷머리는 각각 눈썹과 옷깃에 닿지 않고, 옆머리는 귀를 덮지 않도록 학생지도를 해왔다”며 “2주 전부터 두발점검을 하겠다고 공고했고 아침 등교시마다 정문지도를 통해 규정을 어기고 요즘 유행에 따라 뒷머리를 기른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머리를 깎지 않으면 강제로 깎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는데도 이를 무시해 어쩔 수 없이 집단지도를 통해 머리를 깎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학생들은 “단속규정과는 관계없이 학생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는 등 학생들의 인권과 자율성을 무시해왔다”고 주장했다.

두발 단속에 찬성하는 쪽은 “규율을 지키는 배움의 한 과정”이라는 입장.

누리꾼 ‘nhk4023’은 “학교에서 공고에 경고까지 했다”고 강조하면서 “규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인권을 어떻게 존중해 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wood’는 “학생때 규칙이란 걸 몸으로 익혀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인권은 아무 때나 갖다 붙이면 해결되는 파스가 아니다. 인권 운운하면서 선생님들을 모독 하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질타했다.

‘추가정보’도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교육시켜야 하고, 인권을 누리기 위하여 법과 규범을 준수할 줄 아는 국민으로 키워야 한다”며 “어디 인권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아무데나 갖다 붙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두발 단속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은 두발 자유화는 학생들의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된 학교의 자유게시판에 항의성 글을 올린 ‘orgy’는 “두발자유화에 반대하는 선생들은 말합니다. 외모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신경 쓰라고” 라고 운을 뗀 뒤 “저는 그 선생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남의 외모에 신경 쓰지 마라.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외면보다 내면을 중요시하라면서, 내면은 보지 않고 외모만 규제하려는 거냐?”고 반발했다.

‘jlkkk1580’은 “이건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도대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학생들도 어엿한 하나의 인격체인데 선생님들 마음대로 자유를 구속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포털사이트 미디어 다음 ‘네티즌 청원’에서 ‘우리들의 인권을 돌려달라’라는 제목으로 실시중인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네티즌 청원에 8만 5000여명이 서명했다. 또 ‘시대에 뒤떨어진 두발규제 폐지’라는 제목으로도 3만 2000여명의 네티즌이 서명을 마쳤다.

이밖에 청소년 커뮤니티 포털사이트인 ‘아이두’에서도 ‘두발제한폐지 서명운동(http://www.idoo.net/?menu=nocut)’을 펼치고 있다. 최근 사이트 운영자들은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중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 A고에 재학중인 B군은 지난 달 31일 국가 인권위원회에 “교칙에 의거한 두발 단속은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제12조 1항)에 위반된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는 “학생들의 뜻과 무관하게 머리카락 길이를 제한하는 것은 일제의 잔재이자 강압적인 교육의 표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번 진정을 계기로 보다 많은 학생들이 두발 자유화 운동에 동참해 뜻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 학교폭력 대책팀의 박규선 연구관은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는 2000년 실시된 이후 일선 학교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학생들은 정부에서 두발 자유화를 강제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반대로 일률적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규정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있어 정부는 지금처럼 일선 학교에 재량권을 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의 머리가 길다고 해서 많은 동료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제로 자르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해당 교육청에서 행정 지도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