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열전/허경진 편역/626쪽·2만5000원·한길사
조선 중종 대에 이수라는 종친(宗親·왕의 친척)이 있었다. 옥피리를 잘 불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어느 날 황해도에 갔던 그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임꺽정의 장막이었다.
“네가 바로 옥피리를 잘 부는 이수냐?” “그렇소.” “짐 보따리에 피리가 있느냐?”
이수는 어쩔 수 없이 서너 곡을 불었다. 그런데 갑자기 꺽정이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그도 결국은 관군에게 잡히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픈 곡조를 들은 꺽정은 슬프고 처연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연주가 끝난 뒤 꺽정은 잇달아 네댓 잔이나 술을 권한 뒤 부하에게 이수를 골짜기 앞까지 모셔 드리라고 명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늘날에만 ‘스타’와 ‘아이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 여옥은 강물에 빠져 죽었지만, 그가 지은 ‘공무도하가’는 당대의 히트곡이 됐다. 고조선 시대의 여옥을 시작으로, 편역자는 풍류가무를 즐겼던 우리 역사 속의 예인들에 관한 기록을 샅샅이 찾아내 소개했다.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했을 뿐, 개인적 평가는 덧붙이지 않았다. 백결 우륵 처용 박연 황진이 등 학창시절부터 교과서로 친근한 인물은 물론, 소리로 환대를 받았던 이름 없는 관노(官奴)까지 140여 명이 소개됐다.
그중에는 주장이 엇갈리는 사료도 있다. ‘거문고’라는 이름을 만든 이는 누구일까.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진나라의 칠현금을 타자 검은 학이 와서 춤추었으므로 ‘현금(玄琴)’ 즉 ‘검은 금(거문고)’이 되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다르다. 검은 학이 춤춘 정황은 같으나, 거문고를 연주한 주인공은 신라의 옥보고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밖에 남의 상가에 가서 곡소리를 듣고 ‘계면조의 곡(哭)은 평우조(平羽調)로 받아야지’라며 노래로 곡을 한 송실솔, 명나라 황제의 궁녀였다가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올 때 따라와 고향을 그리는 비파 연주로 주위를 경탄케 한 굴(屈) 씨, 거지들의 잔치에 용호영(龍虎營·조선시대 궁궐의 호위를 맡은 군영)의 풍악을 제공하고도 ‘쾌남아들’이라며 통 크게 웃어넘긴 이패두 등 여러 예인들의 일화가 펼쳐진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