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뇌 과학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클리언 병원을 방문했다. 병원장을 맡고 있는 브루스 코언 박사에게 하버드대 의대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그는 거침없이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기초연구가 튼튼하기 때문이죠.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에 의존해 살아가는 의학 시대는 이미 지났어요. 우리 병원에서만 1년에 4000만 달러(약 400억 원)의 연구비를 투자합니다.”
지난해 8월에는 유럽의 혁신 클러스터 현황을 참관하기 위해 스웨덴의 웁살라대가 운영하는 사이언스 파크를 방문했다. 우리를 맞아 준 사이언스 파크 책임자는 의학박사였다.
그는 “2005년 우리 웁살라대의 생명의학 분야에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메디컬’이 500억 원을 투자해 연구소를 지을 예정”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막대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비결은 웁살라대 의대가 오랫동안 기초연구에 역점을 둬 왔다는 점과 상용화를 위해 인문사회학 등 다른 학문 분야와 원활한 융합연구를 해 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웁살라대 주변 1km 반경에 2000여 명의 박사 연구진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으며 노벨상 수상자가 8명이나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인적 자원은 충분히 확보된 셈이었다.
하버드대와 웁살라대 의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머지않아 대박을 터뜨릴 글로벌 의약상품과 회사가 탄생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런 분위기여서 우수한 학생들이 당연히 의대에 많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의 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기초의학을 연구해 획기적인 신약 개발에 기여하는 일이다. 임상의가 자신이 속한 병원에서 환자를 1년에 100명 치료할 수 있다면 기초의학자는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훌륭한 성과를 내면 그만큼 재정적인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는다.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연구 여건과 재정적 지원이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는 경영 능력을 키워 벤처회사를 창립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의대 코언 박사는 “이제는 병원도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도 경영을 알아야 하고 회사를 몇 개 거느릴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단순히 환자 치료에 의존해 병원을 운영하는 단계를 넘어 기초의학에서 개발되는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하고 환자 중심의 서비스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해 ‘규모는 작지만 전문화된’ 신개념의 병원을 운영해 내려는 것이 목적이다. 코언 박사는 “조만간 정보기술(IT)에 이어 의학 분야에서 벤처 억만장자가 탄생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과의 만남은 현재 한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몰리고 있는 현실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늦어도 10년 후에는 의학계 인력의 공급 과잉으로 임상의들에게는 적지 않은 위기가 닥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의대를 지망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기초의학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기초의학 전공자들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선진국의 변화 추세에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의학계에서 치료보다 연구 중심의 분위기가 얼마나 빨리 정착되느냐가 한국의 생명공학기술(BT)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느냐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창모 인제대 총장·나노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