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동체의 목적은 무엇이며 가장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정의란 무엇이며 과연 정의로운 사람이 부정의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가? 서양세계 첫 정치철학서로 평가되는 플라톤의 ‘국가’는 이 같은 물음을 제기하며 정치공동체 내에서 인간의 삶을 전체 모습에서 검토한다.
이 책은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한 저자의 조국 아테네가 50여 년의 융성기를 보낸 후 스파르타와의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몰락해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그가 사랑하던 아테네 식 정치공동체의 회생에 대한 저자의 깊은 소망이 담겨 있다.
그는 또 자신의 이상국가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예견하고는 그런 국가가 지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라고 책의 말미에 밝히기도 했다. 유토피아를 통해 그가 그린 것은 허황한 꿈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진 능력이 최상의 수준에서 발휘되는 공동체의 모습과 그 성립을 위한 조건이다.
이 책에 담긴 그의 성찰은 그 시대와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상황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삶의 문제를 얘기할 때도 언제든지 대입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데 특히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오늘의 시각에서도 대담하다고 할 수 있을 많은 주장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철인통치론이나 시인추방론, 사유재산을 갖지 않는 통치자들의 이상적 공산공동체 구상, 여성통치자가 등장할 기회 부여, 그리고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주장 등이 그렇다. 이런 주장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온 것은 ‘국가는 정의를 토대로 할 때에만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앎에 기초한 통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모든 이에게 각자의 것’이라는 정의 아래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그에 합당한 것을 배분받으며 △각자 타고난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공동체가 가장 좋은 나라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구성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통치하면 그 나라가 가장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며 이를 ‘철인(哲人)통치’라고 정의했다. 이는 서양문명 초창기의 ‘지식국가’ 모습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어제 나눈 긴 대화를 다시 전하는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대화가, 누구와, 어떻게 이어질지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 설정을 통해 대화자가 누구이며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향후 논의내용과 전개방향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열린 구조’를 갖게 된다. 독자들은 어느 단계에서나 전혀 다른 논의 전개를 시도하며 대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플라톤은 철학이 특정한 교설(敎說·가르치고 설명함)의 ‘굳은 체계’가 아니라 주어진 문제에 관해 진리를 추구하며 이것이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생동하는 현장’임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플라톤은 제기되는 물음과 비판에 대해 방어하며 근거를 제시하는 탐구의 작업만이 학문이며 철학일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박종현 교수의 공들인 번역 덕분에 2500년 전의 고전을 한국의 독자들도 정확하고도 유려한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김남두 서울대 교수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