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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사制, 내년 확대한다는데… 15만원짜리 ‘1분 변론’

입력 | 2005-04-11 03:12:00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이르면 내년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된 모든 피의자가 국선변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로 최근 의견을 모았다. 국민에게 좀 더 나은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일선 변호사들은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초라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선변호사 운영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사개추위의 방침은 ‘전시행정’에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초라한 국선변호 실태=“피고인은 깊이 반성하고 있지요? 가족들에게 미안하지요? 앞으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갈 거지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P 씨에 대한 항소심 결심이 열린 1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호 법정. 국선변호사가 피고인 신문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안 됐다. 직전에 검사가 피고인을 조목조목 추궁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재판이 끝난 뒤 변호사에게 “변론이 너무 짧은 것 같다”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1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사건이라 피고인이 반성하는 모습만 보이면 된다”면서도 “국선변호 사건의 경우 순서를 기다리는 사선(私選) 변호사들에게 눈치가 보여 빨리 끝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국선변호사 선임은 변호인 없이 재판을 열 수 없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한 법원의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국선변호사들은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자백사건이 아니면 사건 자체를 꺼린다. 한 국선변호사는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해 유·무죄를 다퉈야 하는 복잡한 사건은 사선변호사를 선임하도록 은근히 권유한다”고 말했다.

▽갈 길 먼 국선 전담 제도=국선변호가 소홀히 취급될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법원이 지급하는 건당 기본 변호료가 15만 원에 불과한 것.

사법부도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를 시범 도입해 현재 전국 11개 법원에서 21명이 활동하고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사선 사건을 맡지 않는 대신 법원이 일정 수준의 수입을 보장해 주는 제도다.

국선전담변호사들의 변론은 일반 국선변호사에 비해 훨씬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이석준(李錫埈) 국선전담변호사는 올해 초 재판부로부터 어렵게 보석허가 결정을 얻어냈으나 피고인이 보석금 1000만 원을 낼 돈이 없자 사재(私財)를 털어 보석금을 미리 내주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로펌(법률회사) 변호사들이 공익 측면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정책에는 아직 성과가 없다.

서울중앙지법에만 부장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 4명이 ‘봉사’ 차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체로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새내기’ 변호사들이 공부도 하고 법원 내 인맥도 넓힐 목적으로 활동하는 게 현실이다.

새서울합동법률사무소 윤영근(尹榮根) 대표변호사는 “현행 체제가 그대로 간다면 사개추위가 국선변호 적용 범위를 넓히더라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비판이 안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책은 없나=법원 행정처 홍기태(洪起台) 사법정책연구심의관은 “현재 연 170억 원인 국선변호사 예산을 연 400억 원으로 늘리고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도 투자로 사선 수준의 변호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범죄 용의자를 보호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조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표변호사는 “퇴임 후 돈만 좇기보다는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일정 기간 국선변호에 적극 참여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