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방글라데시에 엄청난 기아가 닥쳤다.
치타공대학의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경제학이란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 회의했다.
1, 2달러가 없어 하루 종일 일한 대가를 고스란히 고리대금업자에게 빼앗기는 사람들을 본 그는 소액 융자사업(마이크로 크레디트)을 시작했다.
담보나 신용이 없어 은행조차 외면하는 빈민들에게 돈을 빌려 줌으로써 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공짜는 아니었다. 대출자들은 5명씩 그룹을 지어 각자 필요한 만큼 돈을 빌리고 매주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회 밑바닥에서 구걸하며 살던 사람들이 과자나 옷감을 만들어 팔고 송아지를 사서 키워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아 나갔다.
유누스 교수가 세운 ‘그라민은행’은 현재 1170여 개 지점으로 늘어났다. 99%의 원금 상환율을 자랑하며 회원 240여만 명에게 새로운 삶을 지원해 주고 있다.
최근 정부와 금융권이 내놓은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에도 이런 소액융자의 개념이 보인다.
신용불량인 영세 자영업자에게 빚 상환을 연기해 주는 것은 물론, 재기 가능성이 있으면 최대 2000만 원을 새로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청년 신용불량자도 이자를 탕감해 주고 원금을 오랫동안 나눠 갚도록 했다.
360만 명이 넘는 신용불량자들은 한국 사회에 큰 부담이다. 이들 중에는 빚의 악순환을 끊어 주면 재기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생색내기용 정책이 아니라면 성공 요인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저개발국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성공한 것은 일할 능력과 의지는 있지만 최소한의 자본금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업의 물꼬를 터줬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경쟁이 치열한 산업국가에서 성공하려면 더 많은 전제조건과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 일할 능력과 의지는 물론 사업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금융 지원 후에도 사업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은행 외에 중소기업청의 창업 지원이나 노동부의 고용안정센터 등과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런 보완장치 없는 금융 지원은 은행의 추가 부실과 사회의 도덕적 해이만 키울 우려가 있다.
2005년은 유엔이 정한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다. 환경, 평화, 남녀평등처럼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라 한 사람 또는 기관이 창안한 제도를 유엔이 한 해의 주제로 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소액융자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절대빈곤을 퇴치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제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열정이다. 정부는 은행의 팔만 비틀고, 은행들은 마지못해 시늉만 내는 상황에서 이 대책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