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Travel]하얀 그리움안고 꽃비가 쏟아지네…섬진강 벚꽃길

입력 | 2005-04-14 16:53:00

저 벚꽃이 모두 하룻밤새 피었다니!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에 밤잠 설쳤다는 화개골 촌로의 말이 과장만은 아닐 듯하다. 경남 하동의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마주한 화개천 벚꽃길. 하동=조성하기자


○ 비록 늦었지만… 꽃피지 않는 봄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올해 봄만큼 이 말이 들어맞은 해도 없다. 남쪽 지방의 벚꽃 축제는 꽃이 제대로 피기도 전에 막을 내려야 했고 벚꽃 축제의 고향인 진해마저도 꽃 대신 사과의 말로 축제를 시작해야 했을 정도다. 남쪽의 꽃소식은 주초에야 늑장 답지했고 그 마저도 두서없이 전국을 배회, 하동 쌍계사와 서울 여의도가 동시에 벚꽃으로 덮이는 하수상한 시절을 연출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가 자연이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 삶의 지혜. 게다가 이런 변화가 우주만물 가운데 자연을 거스르는 유일한 존재인 사람에 의한 인위의 소산임을 안다면 자연을 탓할 일은 아닐 터. 그러니 잠자코 주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양부터 갖춤이 도리다. 꽃이 늦게는 필지언정 안 피는 경우는 없으니.

남쪽의 섬진강은 사철 언제 찾아도 좋다. 고운 백사장과 푸른 강물의 어울림이 좋고 넉넉한 지리산의 산자락을 감싸안고 휘도는 유려한 흐름이 좋다. 그 강물을 바라보니 도시의 각박함에 날이 선 모난 성정이 둥그스름하게 연마되어 부드러이 변하는 느낌을 갖는다. 그것이 유독 나만의 것은 아닐 터이다.

옛 전라선 철길(구곡성역~가정역 13.2km)의 증기기관차. 동아일보 자료사진

차를 몰아 대전통영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반도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이 길은 수도권에서 지리산을 찾기에 좋다. 장수 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에 올랐다. 남원을 거쳐 구례로 간 뒤 섬진강을 끼고 하동까지 달릴 참이었다. 지리산 산수유마을(구례군 산동면)과 섬진강 매실마을(광양시 다압면), 쌍계사 십리벚꽃길(하동군 화개면)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환상의 루트다.

그런데 예서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이 하나 있다. 봄날의 섬진강 벚꽃길이다. 봄볕 따사로운 오후, 눈꽃 핀 나무처럼 하얗게 벚꽃으로 온통 뒤덮인 강변을 자동차로 달리는 기분. 요즘 봄 정취를 느끼기에 이만 한 것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구례군의 산동 마산 광의면을 지나 토지면에 들어설 즈음. 오른편에 섬진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나타나는 거대한 아치형 현수교(남도대교). 예서부터 경남 하동 땅이다. 남도대교 앞 옛 화개장터를 끼고 왼편 계곡 길(1023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오른편 화개천을 따라 벚꽃 만개한 나무가 꽃 터널을 이루는 이 길. 쌍계사로 이어진 ‘십리 벚꽃 길’이다.

절 앞 다리(신촌교)로 계곡을 건너 반대편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여기도 벚꽃이 화사하게 길을 장식한다. 화개장터를 지나면 남도대교. 섬진강을 건너 마주한 구례 땅으로 간다. 다리 끝에는 19번 국도처럼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861번 지방도가 있다. 구례와 광양을 잇는 길이다.

○ 터널 이룬 벚꽃길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삼거리에서 우회전, 구례로 향한다. 19번 국도와 달리 차량 통행이 적어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벚꽃 핀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벚꽃 드라이브에 그만이다. 그러나 감탄사를 터뜨리기에는 이르다. 조금만 더 가면 길가의 벚꽃을 벗해 섬진강변을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초입은 대평마을(구례군 간전면) 삼거리. 우회전하면 ‘문척 서성암’ 방향으로 이어지는 861번 도로에 다시 접어든다.

이곳 강변은 수달 서식처다. 그 팻말을 지나면 도로는 하동보다 늦게 피는 벚꽃 길로 변한다. 오른편으로는 깨끗한 섬진강이, 정면으로는 터널 이룬 하얀 벚꽃 길이 펼쳐지는 이곳. 대평마을부터 오산을 지나 서성암 입구까지 9.5km다.

도중 벚꽃 화사하게 피운 수백 살 된 거목이 정자를 이룬 삼거리에 잠시 멈추자, 길가 담장 안 벚꽃 핀 정원에 ‘오봉정사(五鳳精舍)’라는 고옥이 보인다. 구한말 면암 최익현(崔益鉉) 선생을 따라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의로운 선비 임현주(林顯周·1858∼1934)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고옥에서 피어나는 봄날의 풍정이 그윽하다.

섬진강변 벚꽃 길은 서성암 입구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 이어지는 좁은 마을길을 따라 강변의 다리를 건너 구례구역으로 가서 17번 국도를 타고 곡성읍을 향해 떠나자. 또 한 번 섬진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맛집=‘꺼먹돼지 순대’의 순대국밥(4000원)과 막창순대(6000원)는 지리산 흑돼지를 이용해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 19번국도 논실삼거리(88고속도로 남장수 나들목 입구)의 장군휴게소(063-353-6002, 3·남원시 번암면)에 있다.

구례·하동·곡성=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올 꽃소식 열흘가량 늦어…서울근교 17~19일 절정▼

올해는 전반적으로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늦게 피는 추세. 섬진강변에서는 지난 주말에 만개했지만 주말까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해와 경주, 합천호반 부근은 많이 진 상태다. 그러나 완주 송광사, 군산(전군가도), 계룡산 동학사, 제천시 청풍호반은 주말이 절정에 이를 전망.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벚꽃의 만개 시점은 17∼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