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발표된 장편소설 ‘변신인형’은 왕멍(王蒙)의 대표작이다. 왕멍은 20세기 후반의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최근 들어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고 있는 그의 소설은 1940년대부터 문화대혁명까지 사회주의 중국의 분투와 영광, 실패와 상처를 짊어지면서 개혁 개방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이르는 새로운 시대와 삶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 소설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첫째는 1942∼1943년 일본에 점령당한 베이징의 한 가정 이야기다. 이 가정은 아버지, 어머니, 이모, 외할머니, 누나, 남동생(주인공 니자오)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는 유럽 유학까지 다녀온 신지식인이지만 속물적이고 방탕한 인물로 그려져 봉건적인 삶에 매몰되어 있는 어머니, 이모, 외할머니 등과 끊임없이 싸운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언어학자가 되어 있는 성인 니자오가 1980년 독일을 방문해 겪는 이야기다. 니자오는 아버지의 옛 친구인 한 독일인 학자의 집에서 ‘난득호도(難得糊塗·어리석어지기가 어렵다는 뜻)’라는 정판교(鄭板橋)의 글씨를 보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셋째는 니자오가 귀국한 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고 1942∼1943년 당시 가족 구성원들의 훗날의 삶과 죽음에 대한 회상이 전개된다.
넷째는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자신의 삶의 주요 장면과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개개인의 황폐한 삶이다. 그 황폐함은 너무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워서 거의 인간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온통 불화와 적의만으로 이루어진 듯이 보이는 그 부정적인 삶들은 차라리 폐기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 니자오의 젊은 시절을 통해 그러한 삶들의 폐기를 주장하며 이모와 외할머니를 반동분자로 고발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난득호도’라는 글씨를 계기로 시작된 회상 속에서 그 삶들은 부정적인 동시에 진정성을 지닌 모순된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 모순의 발견은 이미 니자오 자신이 1957년 우파분자로 몰려 핍박받았을 때부터 잠재되어 있던 것이고, 그 잠재태가 1980년의 회상을 통해 현재태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왜곡된 삶 속에 숨어 있는 진정성과 의미, 그 모순을 보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이상(理想)은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해 억압적일 수밖에 없으며 거짓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강력한 전언이다.
이는 작중 인물 니자오와 작가 왕멍의 자기반성이며 나아가서는 중국의 사회주의혁명 전반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고 개혁 개방이라는 새로운 현실과 미래에 대한 비판의식의 점검이다. 20세기 중국이라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제기된 이 메시지는 그 맥락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녔다.
이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특히 주목할 것은 시점과 화법의 복합이라는 특유의 서술 방식을 통해 왜곡된 삶 속에 숨어 있는 진정성과 의미가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 서술 방식을 깊이 음미할 때 한층 풍부한 독서가 가능해질 것이다.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