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씨 등 일곱 자녀 모두를 세계 정상급 음악가와 의사 교수 등으로 키운 어머니 이원숙 씨는 “자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결정된 일은 함께 공부한다는 자세로 지원하라”고 말한다. 피아니스트 명훈 씨, 이 씨, 바이올리니스트 경화 씨, 첼리스트 명화 씨(왼쪽부터)가 1992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정트리오 연주회에 앞서 함께 촬영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이원숙 지음/223쪽·1만2000원·동아일보사
“우리 어머니는 생일이다 입학이다 격식대로 때맞춰 챙겨주시는 것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딱 집중해서 ‘세트업’ 해주시는 그런 분이었어요. 대담하고, 한번 결정하면 무서울 정도였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는 2002년 봄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요즘 유행어로 풀어내자면 ‘선택과 집중’에 능한 어머니였던 모양이다. 책 제목에서도 그런 뜻이 읽히지 않는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정명훈, 첼리스트 정명화 씨 등 세계적인 음악가를 셋이나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 씨가 자신만의 ‘맞춤 자녀교육 비결’을 공개한다.
▽조기교육에는 극성을 떨어도 좋다=광복 후 서울의 혼잡한 시장 근처에 살며 장사를 했다. 아이들이 거칠게 자라지 않을까 염려돼 거금을 주고 피아노를 빌려 왔다. 1·4후퇴 때도 피아노는 싣고 갔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일찍부터 격려하는 일은 극성이 아니다.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주어라=명화는 바이올린에 영 취미를 붙이지 못하다 첼로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명훈이는 어려서부터 ‘세상에서 피아노하고 초콜릿이 가장 좋다’고 말하더니 일곱 살에 하이든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적성과 재능을 발견하는 데 부모의 욕심이 개입돼선 안 된다.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경화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외국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왔다. 명화와 경화를 데리고 가 무조건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 해외 이주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1962년 시애틀 세계박람회에 참가만 하면 미국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막내까지 실로폰 연습을 시킨 뒤 연주 초청장을 받아 시애틀로 향했다. 돈을 뿌려대며 극성을 떨라는 말이 아니라 아이에게 큰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 부모가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단칠 때와 덮을 때를 분간하라=미국에 살 때 한 아이에게 ‘우등을 하면 자동차를 사 주겠다’고 덜컥 약속했다. 우등을 해서 자동차를 받은 아이는 운전에 빠져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약속을 잘못한 것일 뿐 그 약속을 지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 뒤 뉴욕으로 전학 간 아이는 첫 학기부터 우등을 했다. 인간에게는 시행착오가 중요한 교훈이 되며, 미숙해서 저지르는 실수까지 야단치면 의욕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키워낸 자녀는 ‘정 트리오’ 3남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씨는 플루트 교육의 대가인 장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음악사업을 펼치는 장남,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 최고의 의사로 선정된 4남,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미국에서 대학 교수 겸 목사로 치열하게 살았던 3남 등 모두 일곱 명이나 되는 인재를 키워 사회에 내놓았다.
1988년 목사 안수를 받은 이 씨는 2년 뒤 음악장학재단을 설립해 오늘날도 음악계의 후진 양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