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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당나귀는 당나귀답게’…거세된 황소가 동물의 왕?

입력 | 2005-04-15 17:11:00

사진 제공 푸른숲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아지즈 네신 지음·이난아 옮김·이종균 그림/212쪽·8500원·푸른숲(중고교생)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이라는 이야기야. 동물들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다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

옛날 옛날에 동물들이 숲 속의 왕을 뽑았대. 사자가 대대로 왕위를 물려받아 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동물들은 우두머리를 스스로 뽑고 싶어졌지. 후보를 내고 투표를 하기로 했는데 사자와 호랑이가 서로 헐뜯으며 경쟁을 벌였어.

동물들이 사자가 오랫동안 집권한 것에 싫증을 느껴서인지 호랑이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지. 하지만 한번도 왕 노릇을 해본 적이 없는 호랑이를 불안해 하는 동물도 적지 않았어.

사자는 자기가 뽑히지 않을 바에야 호랑이 말고 누가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호랑이도 같은 생각이었지. ‘네가 잘되는 꼴만은 볼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사자는 엉뚱하게 물소를 칭찬했어. 호랑이도 입이 닳도록 물소를 칭찬했지. 덕분에 물소는 후보로 추대됐어. 그러자 이번엔 물소의 라이벌인 하마가 나섰어. 사자와 호랑이처럼, 하마도 물소가 잘되는 꼴은 볼 수 없었던 게야. 이제 물소나 하마는 곰을 칭찬하기 시작했어. 그러나 곰이 후보에 오르자 곰의 가장 큰 적인 멧돼지가 가만히 있지 않았지. 그래서 당나귀를 칭찬했더니 말이 나서고, 이후 낙타와 기린, 여우와 담비, 늑대와 하이에나, 개와 고양이까지…. 그래서 결국 누가 왕이 됐는지 알아? 거세된 황소가 동물들의 왕이 된 거야. 킥킥.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이 인간의 권력욕, 제국주의의 폐해, 작은 힘의 위대함, 환경 파괴를 일삼는 인간을 통쾌하게 풍자한 우화라고 칭찬하지만, 뭐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게 있어? 원래 삐딱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법이지. 알다시피 나(아지즈 네신)야 ‘풍자 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잖아. 이 책에는 이런 풍자 이야기 14편을 담았어.

양들을 잡아먹으려는 늑대의 모략에 속은 양떼들이 ‘대양(大羊)제국’을 건설하고 ‘양주의(羊主義)’라는 이념으로 뭉치는 이야기(‘양들의 제국’)나,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 유리창을 깨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이상주의자 파리의 죽음(‘위대한 똥파리’), 당나귀가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이 당나귀 말을 하게 된 이야기(‘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등등…. 재미있게 읽어봐.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